♤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
詩爲禪客添錦花 禪是詩家切玉刀
시는 선객(禪客)에게 비단 위 꽃이 되고
선(禪)은 시가(詩家)의 옥 자르는 칼이라네.
禪而無禪便是詩 詩而無詩禪儼然
선이면서 선 없어야 그제서 시가 되고
시 속에 시 없을 때 선이 또한 엄연하다.
詩心何以傳 所證自同禪
시심(詩心)을 무엇으로 전할 수 있나
증명함이 절로 선과 같구나.
學詩渾似學參禪 竹榻蒲團不計年
直待自家都了得 等閑拈出便超然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대 걸상 부들자리 햇수를 따지잖네.
스스로 온전히 깨침 얻기 기다려
멋대로 읊조려도 문득 우뚝 하리라.
學詩渾似學參禪 頭上安頭不足傳
跳出少陵窠臼外 丈夫志氣本冲天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머리 위에 머리 얹음 전할 것 족히 없네.
두보의 굴레 밖을 뛰쳐서 나와야만
대장부의 뜻과 기운 하늘에 솟구치리.
學詩渾似學參禪 自在圓成有幾聯
春草池塘一句子 驚天動地至今傳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자재롭고 원성(圓成)함 몇 연이나 있었던고?
사령운(謝靈運)의 지당춘초(池塘春草) 한 구절이 나오자
천지가 놀라 떨며 지금껏 전하누나.
學詩渾似學參禪 語可安排意非傳
會意卽超聲律界 不須煉石補蒼天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말이야 안배해도 뜻은 못 전한다네.
깨우치면 그 즉시 성률 따윈 내던져서
달군 돌로 하늘 구멍 막아서는 안 되지.
언어란 본래 부질없는 도구다.
말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남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툭하면 오해를 낳고, 곁길로 샌다.
옛 시인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고 노래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다.
말을 매만져 표현을 가다듬는 것이 시가 아니다.
포단(蒲團) 위에 앉아 독경 소리 가다듬는 것이 참선이 아닌 것과 같다.
마음에 문득 와 닿는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토해내야 한다.
성률(聲律)이니 계율(戒律)이니에 얽매이지 마라.
뜻이 없이는 성률도 없다.
깨달음이 없이는 시도 선도 없다.
하늘에 큰 구멍이 뻥 뚫렸다고
돌멩이 가져다가 막을 생각은 말아라.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구차미봉(苟且彌縫) 하느니
붓을 꺾고 종이를 찢어,
혀를 물고 죽는 것이 낫다.
시와 선은 이렇게 해서 한 자리에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