翰墨[緣]
[스크랩] 황정견
율카라마
2008. 11. 6. 19:06
송宋/황정견黃庭堅(1045-1105)/칠언시七言詩/종이,30.7 x 43.2cm .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黃庭堅(1045-1105) 字는 魯直, 號는 부翁 또는 山谷, 강서성 修水사람이다. 1067년에 進士, 國子監 敎 授.國史編修官이 되었다가 1094년 지방으로 좌천, 마지막에는 귀양가 宜州에서 죽었다. 저서 <山谷集>이 있다 황정견(黃庭堅)은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박학다식(博學多識)하여 독자적(獨自的)인 세계를 만들어 냈는데, 그의 독자적인 수법을 도가(道家)의 용어를 빌려 표현한 것이 "환골탈태(換骨奪胎)" 라는 말이다.
"황정견은 "두보(杜甫)의 시를 일컬어 영단(靈丹)한 말로 쇠를 이어서 금을 이룸과 같다.
(黃庭堅稱杜甫詩 如靈丹一粒 點鐵成金)"라고 말했다."
그의 시는 고전주의적인 작풍을 지녔으며, 학식에 의한 전고(典故)와, 수련을 거듭한 조사(措辭)를 특색으로 한다. 강서파(江西派)의 시조로 꼽히며, 《예장황선생문집(豫章黃先生文集)》(30권)이 있다. 서(書)에서는 채양(蔡襄) ·소식(蘇軾) ·미불(米南宮)과 함께 북송(北宋)의 4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글씨는 단정하지만 일종의 억양(抑揚)을 지녔으며, 활력있는 행초서(行草書)에 뛰어났다.
***黃庭堅(1045-1105) 字는 魯直, 號는 부翁 또는 山谷, 강서성 修水사람이다. 1067년에 進士, 國子監 敎 授.國史編修官이 되었다가 1094년 지방으로 좌천, 마지막에는 귀양가 宜州에서 죽었다. 저서 <山谷集>이 있다 황정견(黃庭堅)은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박학다식(博學多識)하여 독자적(獨自的)인 세계를 만들어 냈는데, 그의 독자적인 수법을 도가(道家)의 용어를 빌려 표현한 것이 "환골탈태(換骨奪胎)" 라는 말이다.
"황정견은 "두보(杜甫)의 시를 일컬어 영단(靈丹)한 말로 쇠를 이어서 금을 이룸과 같다.
(黃庭堅稱杜甫詩 如靈丹一粒 點鐵成金)"라고 말했다."
그의 시는 고전주의적인 작풍을 지녔으며, 학식에 의한 전고(典故)와, 수련을 거듭한 조사(措辭)를 특색으로 한다. 강서파(江西派)의 시조로 꼽히며, 《예장황선생문집(豫章黃先生文集)》(30권)이 있다. 서(書)에서는 채양(蔡襄) ·소식(蘇軾) ·미불(米南宮)과 함께 북송(北宋)의 4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글씨는 단정하지만 일종의 억양(抑揚)을 지녔으며, 활력있는 행초서(行草書)에 뛰어났다.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카프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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