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미 서양화 개인전
'햇빛아래의 단상과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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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2일(수) ~ 8월 28일(화)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02-736-1020
오프닝 : 8.22.(수) 오후 6시

햇빛 아래의 단상과 아이러니
이재언 (미술평론가)
정인미의 화면은 언제나 근거리 풍경 혹은 정물적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소박하다 못해 어딘지 모르게 황량하기까지 하다. 낡은 벽과 문이 보이고, 그 앞 어디선가 잡초가 자라는 모습의 풍경은 하이퍼리얼리즘의 향수를 가진 7080 세대에게서 특히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미술의 추세가 전체적으로 속된 말로 ‘튀는’ 개성과 자기만의 독특한 양식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면서 격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그러한 화풍은 진부한 화면으로 치부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같이 작고 소박한 내러티브도 하나의 추세에 속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추세라는 것이 대수는 아니다. 다만 거대한 내러티브에 반발하여 소박하고 치유적인 반성적 내러티브를 모색하는 작가들이 구상 진영에서 많이 나타났던 것이다. 다만 담론 속에서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을 뿐, 대중 속에서 많은 애호가들을 확보하면서 나름대로 스쿨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인미의 그림 역시 그런 범주에서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작가가 추구하는 차별성이 있다면 시적이면서도 극적인 구성의 일관성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1회 개인전에서도 드러난 내용이지만, 작가는 어떤 지점에서 ‘안과 밖’이라는 개념과 정황을 사색하는 내용들을 그림으로 집요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개념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감각을 삽입한 균형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성취가 두드러진다. 빈티지룩을 연상케 하는 낡고 고풍스런 이미지를 통해 어떤 향수와 같은 요소들이 삽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들은 실제의 상황과 대상을 그렸으면서도, 문득 빛바랜 흑백사진을 그린 것 같은 ‘이미지의 이미지’ 혹은 ‘이미지의 해석’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물론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근작으로 오면서 오히려 거친 붓자국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많이 드러낸다. 효과를 위해 컴파운드나 에어 피스 등을 병행하면서도 붓은 붓답게 터치를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붓의 리듬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기계적인 묘사보다는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화면을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나무 울타리의 틈으로 나온 장미 넝쿨, 낡은 창에 반영된 바깥과 또 어느 정도 투시된 안쪽의 이미지가 중첩되고 있는 정황, 굳게 닫혀 더 이상 사람의 인적이 없어 보이는 철문, 육중하면서도 그림자만이 주인이 되어 있는 벽........이렇듯 작가의 그림은 어떤 경계라는 것이 항상 주어져 있다. 안과 밖을 결정하는 경계의 문제를 관조하는 것이 작가 미의식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은 다분히 시적면서도 어떤 드라마 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으며, 또한 보는 이에게 어떤 극적 상상력을 자극하게 된다.

작가가 ‘밖’의 정황으로 그리는 것은 주로 나무나 풀 종류이다. 식물의 이름을 알기 어려운 잡초 종류들이 많으며, 그마저 주로 시들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어떤 면에서는 마른 풀과 잿빛 담벼락, 그리고 거기에 드리워진 길고 짙은 그림자는 깊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시든 풀과 잿빛 담, 긴 그림자(석양에나 볼 수 있을 것 같은)는 기호적 동류임이 분명하다.

화사하고 매혹적인 꽃의 이미지들도 많은데, 왜 작가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황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작가라고 왜 화려하고 탐스런 꽃의 유혹이 없을까. 단지 확실한 것은 푸른 잎과 화사하고 탐스런 꽃, 즉 존재의 절정을 시사하는 상태로 묘사되어 있을 뿐이라면, 거기에 무슨 사색과 사념의 여지가 있겠는가. 햇볕을 누려 풍요로워야 할 담 밖에 웬 아이러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저 담 안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사유적 모티브를 적절히 삽입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그림이 가지는 성취이다. 소박한듯하면서 권태가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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