翰墨[緣]

[스크랩] 이인문

율카라마 2008. 11. 14. 15:47

 

작가 : 이인문(李寅文)
아호 : 유춘(有春).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제목 :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부분
언제 : 18세기 중엽
재료 : 두루마리 비단에 수묵담채
규격 : 44.1 x 856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인문은 당시 조선 화단(畵壇)의 총아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와 함께 쌍벽을 이루었던 화가였다. 강산무진도는 그의 대표작으로, 사계절의 대자연의 경관을 그린. 긴 두루마리 이다. 강산만리의 변화무쌍한 풍경이 세화(細畵)로서 끈기있게 그려졌으며. 수산. 농경. 해운에 이르기까지 평화로운 민생(民生)을 감싼 유교적 산수관이 맥맥히 서려있다. 한국 그림으로는 드물게 보는 정력적인 대작이라 할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수화가 이인문의 관록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이 두루마리는 원래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소장했던 것으로서 두루마리 머리에 “추사 김정희씨 노고지인(秋史 金正喜氏 老考之印)” “추사(秋史)” 두루마리 말미에는 “김정희인(金正喜印)” “자손영보(子孫永寶)” “초사진장(秋史珍藏)” 의 수장인이 찍혀있으며. “이인문욱도인인(李寅文郁道人印)” 이라 한 작자 도장이 찍혀있다. 이인문은 영(英). 정조(正祖) 양대에 걸쳐서 활약한 직업화가였으며. 명대 절파계(浙派系)류의 여운을 이은 작가로서 주로 산수화에 전념하면서 당시 한양 화단에 퍼지기 시작한 남종화풍(南宗畵風) 에도 마음을 쓴 작가였다. 이인문의 자는 문욱(文郁). 호는 유춘(有春)또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을 즐겨 썼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제목 : 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
언제 : 18세기 중엽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86.3 x 57.7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인문의 만년의 작품으로. 구도와 준법(皴法) 등 모든 기법이 산수화의 대가다운 깊이를 보여 주고 있다. 그가 비록 화원(畵員) 출신이지만. 이미 문인화의 깊은 경지를 터득하고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있다. 특히 가까운 경치의 암벽에서 원경으로 보이는 어렴풋한 송림에 이르기 까지 그 배경에 깃든 청아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의 정취등은 그의 그림 속에서도 드물게 보는 현실적인 한국 산수의 청정함을 느끼게 한다. 단지. 누각에 모인 인물들의 복식이나 태도 등이 중국풍으로 느껴지는 점에 다소 위화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화면 위쪽의 화제(畵題)에 의하면 이것은 1820년 경신년(庚辰年)의 작품으로 76세 때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제목 : 송계한담(松溪閒談)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37.3 x 77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이인문은 김홍도와 동갑내기 화원으로 산수에 뛰어났으며. 묵포도(墨葡萄)도 잘 그렸다. 그의 호인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이 시사하는. 소나무와 맑은 내가 흐르는 정경을. 자주 그림의 소재로 삼았음을. 현존하는 작품을 통해서도 짐작할수 있다. 다만 당시 크게 유행한 실경산수에 대해선 외면한 듯. 이 소재의 그림은 드문 편이다. 수옥정(漱玉亭)과 같은 실경풍(實景風)의 그림에 한복을 입은 인물이 등장되기도 하나. 이 풍속적인 성격의 그림 역시 몇점 안 된다. 이런 점에서 김홍도와 비교되며 다양한 여러 소재를 택하지 않은 점에서 김홍도 명성에 가려 소흘히 됨을 피할수 없었다. 그러나 산수화에서 그아 이룩한 높은 경지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음은 김정희(金正喜) 구장(舊藏)의 장대한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및 71세 노필(老筆)로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8폭 산수병(山水屛)을 위시해 그 밖의 화적(畵跡)을 통해서 확인된다. 그에 대한 성가(聲價)를 분명히 해주는 평을 살피면 남공철(南公轍)은 이인문을 명(明)의 당인(唐寅)에 비견하고 있으며. 신위(申緯)는 김홍도와 더불어 선조대(先祖代) 화원 중의 묘수(妙手)로 제발(題跋)에 언급하고 있다. 이인문의 산수들은 특히 완숙한 경지에 도달한. 노년시기의 대작들을 통해서 그 진면목을 보게 된다. 박제가(朴齊家)의 화평(畵評) 중에 “ 갈필로 산을 그리고, 발묵으로 나무를 표현해, 명암과 향배(向背)의 묘제(妙䜞)를 얻었다” 는 구절은 그의 산수를 잘 대변하고 있다. 고송이 적절히 어우러진 숲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담소를 나누는 세인물이 등장된 송계한담은, 선면(扇面) 외에 소폭 편화(片畵)로서, 또는 대폭의 부분에도 자주 나타나는, 그가 즐겨 택한 소재이기도 하다. 적합한 화면구성과 세련된 필치와, 담록가채(淡綠加彩)의 밝은 화면에서 완벽에 이른 화풍임을 알수 있고. 그림 내용이 주는 유현한 분위기는. 이를 넘어 청아함을 불러일으킨다. 왼쪽 하단에 고송유수도인(古松流水道人) 의 관(館) 자가 지워진 관서(款署)는 마치 작품제목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제목 : 도봉원장(道峰苑莊)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26.5 x 33 cm
소장 : 한국개인

해설 : 이 작품은 행유도(行遊圖)와 같은 화첩의 한 폭으로 四季山水畵帖 에서는 봄풍경으로 되어 있다. 원산의 표현으로 보아 만장봉(萬丈峯)과 삼각산(三角山)이 비껴보이는 도봉산 계곡 어디에 있는 원장(苑莊)아니면 서원(書院)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왼쪽 산등성이에 있는 성문은 이런 현장감을 강조하는 일종의 에피소드 처리 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역시 이인문의 티없이 맑은 설채가 돋보이는 명풍으로. 원장의 한가로운 정경과. 초가 마을앞 소 모는 농부의 모습이 그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왼쪽 냇물가로 구부러진 선묘(線描)들은 냇가의 버들을 표현한 것인데 이런 묘사법은 이인문의 원경을 그릴 때 즐겨 사용했던 것이다. 이인문의 작품들은 대부분 공간의 설정이 열려진 구도법 으로 전개되어. 화면상의 넓이와 깊이가 대단히 멀고 깊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동시대의 대가이고 그의 벗인 김홍도(金弘道)의 생략을 통한. 집중구도법 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그들의 개성인 것이다. 때문에 이인문의 작품은 보다 먼 거리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제 맛이 나며. 담묵과 농묵의 강한 대비와 울림은 그의 이런 조형적인 배려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카프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