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낭이란 소의 턱 아래 늘어뜨린 방울(↑)을 말해요.
그러니 워낭소리란, 소방울에서 나는 소리지요.
일상의 때에 젖어사느라 감동이
사치가 돼버린 요즘이고 보니
마음을 울리는 영화 한 편으로도
마음이 쉬~ 젖어버립니다.
손수건을 적신
눈물방울이 아름다운 영화
워낭소리를 친구들과 함께 보았어요.

워낭을 흔들며 소와 한평생을 살아온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영화가 워낭소리입니다.
아, 40년 넘게 할아버지의 불편한 발이 되어 일만 하다 늙어 죽은 소가 주인공이던가요.

머슴살이 8년 세월 동안 새벽에 일어나
죽어라 일만 하던 습관이 몸에 베어
일하는 것밖에 모르는 할아버지의 일소인 게 안 된거고
그 할아버지랑 사는 할머니의 불행이라고
투정을 하시는 할머니 말씀이 맞는 줄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러면서도
할아버지 죽으면 나 혼자 어찌살꼬~ 탄식을 하시는
소가 없어져야 할아버지도 일 안하고
할머니도 편하게 살텐데 하면서도
새벽에 소죽쑤라고 할아버지를 깨우는 할머니도 주인공이네요.

소꼴을 먹이며 여유롭게 앉아 쉬시는 할아버지.
잔잔한 그림 같은 시골풍경 안에
사십 년을 한결같이 친구처럼 지낸
소와 있으니 할아버지에겐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눈만 뜨면 밭에서 논에서 소와 자신의 몸을 부리며 일하다
좁다란 논길 사이 불편한 다리 뒤뚱거리며
소꼴을 베어오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
여러 겉가지로 내뻗는 생각으로
배신과 더러운 오해가 난무한 세상에서
오롯하게 한길만 바라보는 저 눈길에
잠시 미안해집니다, 내 맘이.

이렇게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바깥나들이길엔 자가용도 되어줍니다.
나들이 갔다 오는 길 깜빡 자다 일어나 보니
어느 새 집에 닿았더라, 하시며
자랑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참 크시더군요.
자식자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꼭 그랬을 거라 생각 들데요.


할아버지와 닮은 소.
이미 수명을 다해 죽음을 기다리며
느린 걸음이 애달픈
할아버지와 소.
할머니의 잔소리엔
눈 감고 귀 막고 있다가도
갸날픈 워낭소리만 들려도
번쩍 눈을 뜨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일소로 묵묵히 일하느라
뼈만 남은 소.

그런 소를 땅에 묻고
소와 일하던 밭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같은 날 함께 죽자던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먼저 간 게 야속했을까요?

밤하늘의 별들 그 빛나는 별빛조차 사그라들만큼
화려하고 시끄러운 게 요즘 세상입니다.
날마다 탄생하는 하루를 선물로 받으면서도
삶이 고달프다, 외롭다, 쓸쓸하다 노래하지요.
그래서인가요.
산에서, 숲에서 잔잔한 일상에 동반되는 잔잔한 소리가
배경음악을 대신하고 있어 마치 시골집에 다녀온 듯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서도
고단한 농부의 삶을 들여다보자니
마음 한 켠 편히 살아온 내 육신이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때묻은 생각들로 어수선했던 마음을
목욕한 듯 깨끗이 씻어준 영화,
워낭소리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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