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백석(1860-1957)의 그림
제백석: 1860 ~ 1957
호 바이스[白石]. 이름 황[璜]. 후난성[湖南省] 출생. 40세무렵까지 고향에서 소목장(小木匠)을 업으로 하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그림을 그리다가 화초·영모(翎毛:가축이나 가금)·초충류(草蟲類)의 명수로 알려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송(宋)·원(元)의 그림에 촉발되고, 육방옹(陸放翁)의 시에서도 자극을 받아 시·서·화를 배웠으며, 전각(篆刻)에도 솜씨가 있었다.
<蝦圖.1954年.94歲>
제백석은 새우 그림 전문가다. 게, 물고기, 개구리, 새 등도 많이 그렸지만 새우에 관해서는 경지에 이른 그림들이 많다. 죽기 3년 전인 94 세에 그렸다는 이 그림은 무리를 이룬 새우 그림이지만 어지럽지 않으면서 맑은 느낌이다. 인생사를 돌아보며 붓을 잡은 노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 세상 잘 놀다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었을까? 삶은 향유 이다. 무엇을 소유하더라도 결국 다 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새우들은 동무들과 물속에서 노닌다. 서로 몸과 촉수를 부딪히면서 삶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작가의 감정이 작품 속에 이입되는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백석 노인이 삶의 끄트머리에 와서 바라 본 감정은 존재에 대한 예찬이 아닌가 싶다. 소유가 아닌 향유로서 존재적 삶에 대한 찬사가 이 그림에 들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螃蟹>
게를 쪄서 접시에 올려놓았다. 영덕대게는 아닌 것 같고 민물게 같다. 사이즈로 봐서 크게 먹잘 게 없는 게다. 키토신이 많이 들어서 골다공증에 좋을 것 같다. 아줌마들이 껍질 채 씹어 먹는게 좋을 듯.
게는 옆으로 걷기 때문에 횡행공자라고도 하며, 창자가 없기 때문에 무장공자라고 부른다. 속알머리가 없어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는 우유부단함을 지칭하기도 한다.
게 요리는 이 그림처럼 찐 것 보다는 간장게장이 맛있다. 잘 삭은 게장은 밥 도둑임에 틀림없다. 오래 전에 아내와 구리 어름 한강변에 게장집에 가서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마산에서 공수해서 담는다는데 씨알이 작지만 맛은 그만이었다. 꽃게탕 해먹는 큰 게로 장을 담그면 한 마리로 여럿이 먹는다. 눈치보다가 게 껍질 속에 밥 비벼 먹는 것은 용기있는 탐식가들의 몫이다. 속담에 게장은 사돈하고 같이 못먹는다는 말이 있다. 젊잖게 먹기 힘든 음식이라서란다. 요는 젊잔 빼면서 양보하기에는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게껍질 채 들어다 놓고 그 속에 밥을 비벼서 먹는게 좀 남사스럽기 때문에 나온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맛 있어서 그런 것만은 사실이다.
<魚.1951年>
물고기 세 마리가 몸이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멘 앞에 있는 물괴기는 느긋한 폼이 일품이다. 가운데 것은 배가 남산만하다. 뒤에 쫒아오는 놈은 주둥아리를 벌리고 씩씩 거리는 모습이 아직 배가 고픈 모습 같기도 하다. 그림과 글씨가 사선을 이루면서 절묘하게 배치된 그림
<鲶魚.1951年>
백석 노인이 91 세에 그린 메기(鲶魚 염어) 그림이다. 메기나 빠가사리는 등지느러미(검은색으로 돌출한 부분) 가 있어 잘못 잡았다가는 뒈지게 아프다. 수염도 특이해서 수염이 몇 가닥 양쪽으로 난 양반들을 메기수염이라고 부른다.
매운탕으로는 메기나 빠가사리가 최고로 맛있다. 재학이형과 평창강으로 갔던 몇 번의 여행에서 그 맛의 황홀경에 취한 적이 있다. 백석 노인도 분명히 메기 매운탕을 좋아했을 것 같다. 그러니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그려 놓고 식도락의 추억에 잠겼겠지? 메기 매운탕에 풋풋한 돌미나리 잔뜩 넣고 얼큰하게 끓여서 처음처럼 한잔 걸치면 원이 없겠다. 재학이형이 한가할 때쯤 평창 모란팬션에 가서 놀면서 형이 투망질로 잡은 매운탕 한그릇 먹고 싶다. 얼마 안 있으면 평창강가에 가을 단풍이 곱단히도 들겠다.
집오리 그림. 오리가 하늘 바라기를 하고 있다. 목 부근이 뽈록하게 튀어 나온 걸로 봐서 오리가 포식을 하고 매우 만족스럽기 그지 없는 분위기다. 내가 어릴 적 오리를 키워 봐서 아는데 오리란 놈은 하루 종일 단 몇 분도 쉬지 않고 마당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그야말로 오로지 먹기 위해서 태어난 동물이다. 이런 오리가 먹기를 멈추고 철학자처럼 하늘을 보며 사념에 잠긴 모습을 보니 오리 선생 나오겠다.
오리알이 몸에 좋다고 하는데 나로선 계란을 먹지 오리알은 싫다. 크기는 오지게 크고 퍽퍽하다. 유황을 멕인 오리고기가 좋다고 방방곡곡에 오리고기 전문점이 성시를 이룬 적이 있는데 지금은 시들해졌다. 조류독감 여파다. 일산 백마역에서 화사랑 골목으로 가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오리고기집이 있다. 두어번 가족과 갔었는데 이 곳은 음식점이라기보다는 단체 체력 보강 체육관 같았다. 모름지기 음식점이란 분위기와 주인장의 정성, 담소를 나눌수 있는 쾌적한 공간 등이 어우러져야 하거늘 이 곳은 켄베이어 벨트 공장 처럼 시스템화되어 돈을 내면 일정 양이 나와 빨리 쳐먹고 나가라는 분위기다. 싸고 유명하다고 해서 갔지만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못쳐먹어서 죽지 않는다. 상스럽게 서비스 받으며 먹느니 굶는게 낫다.
<다구매화도(茶具梅花圖)>
다기와 매화가 어우러진 그림이다. 92세에 그린 이 그림은 마오쩌뚱에게 헌정한 것이다. 위에 모택동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예술가로서 일생을 살아 온 백석 노인과 혁명의 대업을 위해 몸을 투신했던 마오쩌뚱은 호남성 출신으로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1950년대 후반이니까 마오가 중국 천지를 공산혁명화 시킨 이후 이다. 백석이 마오에게 이 그림을 그려준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당신도 할만큼 했으니 차도 마시고 꽃 그림도 완상 하면서 삶을 돌아보시지...'
내가 좋아하는 꽃은 라일락이다. 꽃이 내 눈에 들어온 대학교 새내기 시절부터 나는 라일락을 좋아했고 다른 꽃들은 관심이 없었다. 진한 향기에 취하면 넋을 잃을만큼 좋다. 나에게 봄은 라일락 향내로 기억될 뿐이다. 그런데 내 나이 사십이 넘어서부터 매화가 좋아졌다. <천년학>에서 송화(오정해 분)가 수발드는 친일파 지주 백사 노인이 숨 넘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하얀 창호문 밖으로 매화꽃이 흐드러진 모습이 원경으로 잡힌다.
화사한 분홍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은 송화가 백사 노인 곁에서 단정하게 앉아 있다. 문 밖으로 백설기 처럼 흰 매화 꽃 난분분 하고 송화는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 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련만.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야는 꿈 꿈을 깨어서 무엇을 허니
아이고 대고 허허어루 성화가 났네..허어...
매화 그림을 봐왔지만 장승업의 <백매홍매도> 만큼은 나의 눈을 강렬하게 잡아당겼던 작품은 없다. 구할수만 있다면 언젠가 큰 그림으로 복사해서 갖고 싶다. 취한 듯 세상을 살면서도 미친 듯이 예술혼을 불태우고 간 예인 장승업. 그의 일대기는 <취화선>으로 남아 있다.
한 겨울을 이겨내고 아직 북풍의 스산함이 남아있을 때 봄을 예감하면서 눈 속에 피어 올리는 매화꽃 한송이. 고목이 된 나무에서 소복처럼 하얀 꽃 이파리 몇 점을 세상에 내놓는 매화를 보면 삶의 진경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생은 이렇게 아름다운 꽃 몇 송이 남기고 가는 것 아니던가?
포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