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버지의 겨울
아버지의 겨울
/이만섭
굳은살 배긴 어깨위로 나지막히
회토빛 하늘이 내려오는 밤이면
당신은 자리끼를 침목맡에 불러놓고
잠에 드셨습니다.
그런 다음날에는
결빙된 마음을 녹이려
겨울잠에 든 미류나무의 까치 둥지에다
새벽을 걸어놓으시고
기침으로 안부를 일러 주셨지요.
아침으로 쉼없이 바람이 들락이는 가슴
기적처럼 겨울강을 건너 오시면서도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당신의 폐부는 바람의 쉼터였습니다.
한번은 두부장수가 경쇠을 흔들며
지개위에 모락거리는 두부를 얹고서
해장을 권해 온 일이 있었습니다.
유난히 추었던 그 아침
모판위에는 때아닌 겨울안개가 피어났어도
고통을 잊는 일은 가족을 잊는 일이라고
애써 내색도 하지않으시던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쭉정이로 걸러낸 가을날의 콩깍지가
뒷동산 양지녘에 놓였어도
온종일 산비둘기가 풍경치는 일이
다 사람이나 짐승이 격는 생리라고 하셨음에
자식의 봄을 기다리는 누렁소를 위해
서리입김 쓸쓸한 아침에도
풀어진 허리띠 동여매고 외양간을 살피시던 당신은
생각만 해도 목을 메이게 하십니다.
2005.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