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바닥에 닿아야 /김세영

율카라마 2012. 11. 24. 18:29

바닥에 닿아야 / 김세영

 

 

눈물도 허공에서는

추락하는 빗물이다

볼을 타고 흘러

손바닥을 적셔야

비로소 눈물이 된다


번지점프를 하듯

자궁에서 뛰어 내릴 때도

허공에서는 울지 않았다

손바닥에 닿아야, 비로소

첫 울음보를 터뜨리며

강보를 적셨다


수많은 발자국에 패인

길바닥 구덩이에 고여

철버덕거리며 걷는

바짓가랑이를 적시면

빗물도 눈물이 된다


토굴을 파던 앞발이

토담을 쌓는 손이 되었던

직립원인의 기적도

가슴 털을 적시는 눈물을 닦으려는

수십만 년 된 기원이었다


자궁 속 흙바닥에

굽은 등뼈가 닿아야

몸속 깊은 곳, 마지막 눈물방울을

수의의 옷깃으로 닦고

잉카의 미이라처럼

보송보송한 잠을 품을 수 있다.

 

 

- 김세영 시집  『 물구나무서다 』  2012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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