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액자로 남겨진 자들 (외 1편) /최호빈

율카라마 2012. 12. 26. 08:45

액자로 남겨진 자들 (외 1편)

 

   최호빈

 

 

 

시계를 목에 걸고 있는 표적지, 그 문 뒤

무서운 일이 저질러질 것 같은 긴 통로

조금 더 가보자며 촛불이 흔들린다

 

눈빛을 주고받을수록

서로가 불편해지는 얼룩

 

천천히 스쳐가는 휴식에 몸의 절반을 묻어둔 우리는

망가질 수 없는 틀에 갇힌 그림들

 

체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앞쪽에선 말을 더듬고

뒤쪽에선 소용없는 대답을 다듬는다

 

뒤통수로 웃으며

밤마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벽들

 

제자리로 외출할 여력만 남기고 바닥에 주저앉으면

색이 바랜 우리가 결국 쫓아왔던 밤

어떤 몸체 하나가 눈을 뚫고 나간다

 

앞모습과 뒷모습에 차별 없는 그림자가

우리의 무릎까지 차올라서

꼭 필요한 말은 목소리로 보관해야 할 것 같았지

 

주머니에 걸음마를 넣어두지 못한 날

 

그림으로 돌아와 보니

액자가 그려져 있다

 

 

                        —《시에》2012년 가을호

 

 

마스카라

 

 

 

그가 말을 마칠 때마다 정적이 마침표를 찍는다

 

내 눈으로 확인한,

내가 알고자 했던 바깥

 

가슴에서 꺼낸 눈과 머리에서 꺼낸 눈

눈에 혀를 달고 있는 그가 많은 무늬를 토해 나를 놀라게 한다

정이 많아 탈이 난 걸까?

그가 손수건에 입을 대며

내 발에 말을 거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다

웃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웃긴다

 

이야기가 끝나려는 곳의 바람에는 여러 목소리가 있다

 

그가 여러 번에 나눠놓은 피로를

하나씩 내 쪽으로 끌어당기다가

그의 발을 밟을 뻔했다

 

나는 줄지어 심어진 혓바닥을 과감하게 걷어차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눈썹 위에서 잠자고 있는 귀신들

 

그가 던져주고 간 풀을 곱씹어보며

눈앞에 어리는 어두운 결론을 반듯하게 내린다

 

                          *

 

교각 아래

구석의 풀들이 벌레에게 먹히고 있었다

 

손잡이를 가진 바람이 손을 잡아주었다

 

 

 

                         —《현대시》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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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빈 / 1979년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졸업. 고려대학교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12년〈경향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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