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염화미소/ 그랑블루/ 김현옥
율카라마
2013. 8. 25. 17:03
염화미소
김현옥
이제는 할 말 있어도
말 못하겠네
말이 벽이 되는 슬픔을 지나
이제는 할 말 있어도
고요한 미소로 말을 막겠네
말이 진실의 문 하나도 열지 못하는
절망을 지나, 이제는 할 말 있어도
서늘한 가슴에 묻어두겠네
세월 지나 그 사무친 말들
가슴에 연꽃으로 피어난다면
그 환하고 황홀한 순간
시들지 않는 시 한 송이
가슴 시린 그대에게 건네리니
가슴과 가슴 사이
시의 다리 위에서 나는 기다리리,
아름다운 염화미소를
그랑블루
김현옥
살아온 길들을 지우며 떠난 길
그랑 블루, 너는 나의 최후의 집
삶의 강물이 이끄는 대로 순하게
네게로 갔네, 오래 익숙했던 마음의 집을 떠나
깊고 푸른 네 몸 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내 붉은 아가미 물결 따라 춤추었네
오랜 미망의 길들이 사라지자
문득, 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고 푸른 사랑
너는 언제나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 왔었네
햇빛이 순결한 네 몸의 건반을 누르면 너는
푸른 풍금소리로 늙은 내 지느러미 어루만졌네
내가 간직해온 몇 개의 붉은 노래들이
동백꽃처럼 후드득 떨어지고
네가 들려주는 따스한 자장가에
먼 길 가만가만 흘러왔던 내 마음 뉘였네
그랑 블루, 나는 네 속에서 잠들겠네
갓 피어난 분꽃 같은 입술로
너의 깊고 푸른 이마에 굿나잇 키스를 하고
ㅡ시집『그랑 블루』(문학세계사, 2013)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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