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시창작 교실 /정헌종

율카라마 2013. 11. 16. 21:56

시창작 교실


정현종 


 

내 소리도 가끔은 쓸 만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피는 꽃이든 죽는 사람이든
살아 시퍼런 소리를 듣는 거야
무슨 길들은 소리 듣는 거보다는
냅다 한번 뛰어보는 게 나을걸
뛰다가 넘어져 보고
넘어져서 피가 나 보는 게 훨씬 낫지
가령 ‘전망’이라는 말, 언뜻
앞이 탁 트이는 거 같지만 그보다는
나무 위엘 올라가 보란 말야,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란 말이지
내 머뭇거리는 소리보다는
어디 냇물에 가서 산 고기 한 마리를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걸
확실히 손에 쥐어보란 말야
그나마 싱싱한 혼란이 나으니
야음을 틈타 참외서리를 하든지
자는 새를 잡아서 손에 쥐어
팔딱이는 심장 따뜻한 체온을
손바닥에 느껴보란 말이지
그게 세계의 깊이이니
선생 얼굴보다는
애인과 입을 맞추며
푸른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행동 속에 녹아 버리든지
그래 굴신자재(屈伸自在)의 공기가 되어 푸르름이 되어
교실 창문을 흔들거나 장천(長天)에
넓고 푸르게 펼쳐져 있든지,
하여간 사람의 몰골이되
쓸데없는 사람이 되어라
장자(莊子)에 막지무용지용(莫知無用之用)이라
쓸데없는 것의 쓸데 있음
적어도 쓸데없는 투신(投身)과도 같은
걸음걸이로 걸어가거라
너 자신이되
내가 모든 사람이니
불가피한 사랑의 시작
불가피한 슬픔의 시작
두루 곤두박질하는 웃음의 시작
그리하여 네가 만져본
꽃과 피와 나무와 물고기와 참외와 애인과 푸른 하늘이
네 살에서 피어나고 피에서 헤엄치며
몸은 멍들고 숨결은 날아올라
살아 있는 거와 한몸으로 낳은 푸른 하늘로
세상 위에 밤낮 퍼져 있거라.
 


 

―『유심』(2013. 11)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