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달력의 거리 /손미

율카라마 2013. 12. 25. 19:20

달력의 거리

 

손 미

 

 

 

달력 위를 걷고 있었네 늘 그랬듯이

이제, 저 귀퉁이를 돌면 검은 바위 검은 바위 뒤 나무 의자

그것은 사방무늬를 그리는 아가씨의 것

곧 쏟아질 것 같은 목을 열고 나오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요?

잘못 타서, 고향에 가다가, 기차 같은 몸을, 몸을 잘못 타서

검은 빨간 사방무늬 위를 걷고 있다네

짐승 같은 귀퉁이를 돌면 또 다른 귀퉁이 또 다른 귀퉁이

검은, 검은 빨간 짐승은 숨을 죽이고 잠복하고 있네

이제 나는

쫓는 길이었는지 쫓기는 길이었는지

잊었다네 아가씨여

계속 걷고 있었네 늘 그랬듯이

매일 형상이 바뀌는 짐승을 사냥하면

우리는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그러나 돌아보면 다시, 이곳은

언젠가 건너갔던 네모 같지 않은가

 

—《현대문학》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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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 / 1982년 대전 출생. 한남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9년 《문학사상》신인문학상 당선.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만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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