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수첩 /김경미

율카라마 2014. 2. 11. 15:15

수첩

 

 

김경미

 

 

도장을 어디다 두었는지 계약서를 어디다 두었는지

구름을 어디다 띄웠는지 유리창을 어디다 달았는지

적어놓지 않으면 다 잊어버린다

손바닥에 적어놓기를 잊어버려 바다도 그냥 지나쳤다

발뒤꿈치에라도 적었어야 했는데 새 구두에 절룩대며

약국도 그냥 지나쳤다

시계도 적는 걸 잊자 한 달이 어디선가 썩어버리거나

토끼똥 같이 작고 새까매졌다

어디 단단히 적어두지 않으니

살아 있다는 것도 깜빡 잊어 살지 않곤 한다

다만 슬픔만이

어디 따로 적어두지 않아도

기어이 눈물자국을 넘긴다

 

 

ㅡ출처 : 『시작』(2012. 겨울)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만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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