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소시민 /최휘웅

율카라마 2014. 4. 26. 18:56

소시민

  —역설 16

 

   최휘웅

 

 

 

토요일에 죽어 일요일에 천당 갔다가

월요일이 되면 다시 태어난다.

출근길 전동차 안에서 덜 깬 눈을 비비고

아직 덜 핀 꽃들의 하품 속으로 들어간다.

어제 천당에서 만난 아내의 젖꼭지가

그래도 꽃의 향이 조금은 남은 것 같아

볼우물이 자꾸 드러나는데

차 안의 불빛이 그 표정 위에서 흔들린다.

 

화요일을 건너서

수요일에는 그녀와의 약속이 있다.

궤도를 이탈할 때의 긴장이 짜르르 흐르고

알 수 없는 흥분이 잠시 지나간다.

우리 사랑하자고 말하면

자기는 남자와 동침하지 않는다고 정색한다.

그녀에게는 사랑과 동침이 동의어다.

그리고 동침은 죄악으로 의미 영역이 확장된다.

 

목요일엔 세미나가 있다.

죽은 언어들이 칠판 가득 깨알처럼 들어서고

청중들은 권태기의 호수처럼 잔잔하다.

탁자 위의 콜라병이 그녀의 허리와 겹치고

수요일에 만나 칭얼대다 그날 밤 헤어진

그녀의 입술이 왠지 눈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금요일 밤엔 자정이 넘도록 컴퓨터 앞에 있다.

다운 받고 올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수많은 익명의 철새들과 만나고 헤어지다가

토요일은 하루 종일 죽은 남자다.

 

일요일은 신의 궁전으로 가는 길목

벚꽃나무 사잇길로 아내의 등을 따라간다.

교회의 노란 종소리가 가로수 위에서 흔들린다.

연신 맹세를 거듭하며

사랑은 영원불변할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다.

허전하고 쓰린 바람이 늑골을 밟고 지나갔다.

 

 

 

                       —《시와 사상》201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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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휘웅 / 1944년 충남 예산 출생. 198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절대공간』『환상도시』『하얀 얼음의 도시』 『설화-사막의 도시』『녹색 화면』 등. 계간《시와 사상》편집인.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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