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이강산

율카라마 2015. 1. 22. 17:55

 

모항(母港)

 

  이강산

 

 

 

바다는 모두 떠나보내고 일몰만 남겨두었다

바다는 잘 익은 감빛이다

 

겨울 바닷바람에 떨며

나는 저 바다의 숲 왼쪽 모퉁이에 감나무 한 그루 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감나무 아래 장독대가 있고 앞바퀴가 휘어진 자전거 옆에 쭈그려 앉은 사람이 어머니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나는 방바닥으로 뚝뚝 햇살 방울이 듣는 붉은 기와집, 옛집 풍경의 갯벌 속으로 빠져들 것이고

그러면 엊그제 마지막 남은 앞니를 뺀 어머니가 나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릴 것이다

 

보일듯 말듯, 한 번도 골짜기를 보여주지 않는 바다

한 번도 골짜기를 들여다보지 못한 어머니

 

그러나 뒤꼍 귀뚜라미 울음 같은, 그 어렴풋한 말이 무슨 말이든 나는 다 알아들을 것이므로

짐짓 못 들은 척 감나무만 바라보다가

나 홀로 서해까지 달려온 내력이라도 들킨 것처럼 코끝이 시큰해지다가

 

우우우,

원순모음이 새나오는 어머니의 닭똥구멍 같은 입 속으로 피조개빛 홍시 몇 알 들이밀 것이다

 

―마포에서 탈출한 곰소 남자, 생의 절반을 잘라냈어요

―지금쯤 청양 외딴집의 여자 가수는 밤바다를 노래하고 있을 거예요

―다들 감나무만 바라보고 있을 거예요

 

바다는 일몰마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았다

나는 저 바다의 숲 어딘가 틀림없이 감나무 한 그루 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무 기러기

 

 

 

원 하나 내치고 품는 일이다 싶어 솟대 기러기를 깎다가 설 전날 금산장례식장에 갔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 만나는 귀향길이 쥐불처럼 붉어 길 밖에 나서지 못했다

 

그믐밤이 마을 밖까지 환해서 내 품의 눈 못 뜬 기러기 한 마리 고향인 줄 덥석 날아갔다

 

두 번 마주친 망자 몰래 북향으로 새 乙 새 乙 새겼다 품고 내치는 일이 부의함 흰 봉투 같은 밤,

 

먼 그믐밤 불빛들이 걸어서 넘었던 머들령, 나무 기러기 떼 지어 우는지 가고 오는 산길이 다 붉었다

 

 

 

 

 

 

신포우리만두 열무비빔밥에 돌 여섯이 둘러앉았다

생강, 마른 수세미, 구부러진 못

닮았다

 

눈 맞고 별 맞고 인간에도 얻어맞아 저 곡선 얻었을 터

살 닿으면 자갈자갈 흉터들이 터질 듯하다

 

어느 명장이 먹줄을 때렸는지 둥근 몸의 주름살이 등고선처럼 곱다

까마득히 깊다

 

저 겹겹 속으로

귀뚜라미가 울고 쌍둥이가 떠나고 뽕나무가 자라고

여기까지 떠내려온 물결 같은 길이 흐르고, 그리하여

 

돌 같은 침묵이다

맨발로 넘은 만악(萬嶽)의 여정 끝이 저 열무비빔밥이라는 듯

한 입, 한 입 침묵이다

 

 

 

                         —시집『모항(母港)』(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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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산 / 1959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1989년 《실천문학》(시), 2007년 《사람의 문학》(소설)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물속의 발자국』, 소설집으로 『황금 비늘』, 명상기행사진집 『동행(冬行)』이 있다. 2007년 제1회 흑백사진 개인전, 2012년 제2회 흑백사진 개인전을 가졌다.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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