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김지율

율카라마 2015. 7. 13. 20:01

어떤 눈사람의 말

 

  공원 입구에서 그는 장갑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장기 매매와 각서 쓰는 이야기를 했

고 철문 밖으로 사람들이 자꾸 모였습니다

 

  어느 날 침묵이 찾아 왔습니다

 

  모두 그의 이름을 똑같이 말했고 얼굴이 붉은 아이가 울면서 모퉁이 뒤로 뛰어 갔습니

모두 다 죽어 있었어

 

  큰 돌을 넣은 눈덩이가 퍽퍽 날아왔습니다 죽음이 들어왔던 문으로 주검이 나갔습니

다 붉은 발자국들이 몰려간 非常口 앞에서

 

  마지막 죽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난간 끝에 한 아이가 서 있습니다 모두 다 죽었어요 가끔 입을 열기 전에 모든 게 끝났

고 그것이 진실이 되었어요 그는 피 묻은 손수건을 꽉 물고 서 있었습니다 눈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졌고 왼손에 장갑을 낀 사람이

 

 

  긴 막대기를 등 뒤에 푹 꽂고, 지나갔습니다

 

 

 

 

멀리서 온 책

-K에게

 

 

  발이 아주 큰 사람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질문이 끝나면 또 다른 질문

이 시작되고 이 겨울은 아주 오래 추웠습니다 밖에는 며칠째 눈이 내리고 헌 오리털 잠바

를 수선하러 갔습니다 주인은 잠바를 자르는 순간 날리는 털 때문에 고칠 수 없다더군요

빠르게 결론을 내리면 한 번에 끝낼 수 있었을까요 당신을 보내고 읽은 오독의 문장들이

빛나는 저녁입니다 이 문장과 진술 뒤의 굴욕으로 나는 나의 악몽입니다 訃音입니다 종

이 끝에 베인 손가락으로 벌린 제 항문의 시작과 끝은 여기까집니다 뛰어내릴 빈 곳이 어

디에도 없어요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몸속으로만 울다 죽은 사람들 나는 당

신의 피 묻은 책이 두렵고 미쳐 도망간 자들과 추방된 자들 사이에서 늘 쫓기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 본 얼굴과 말이 없었던 사람들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왜 그렇게 살고 있

느냐는 말 어디쯤에서 뜨거워져야 하는지 한 장씩 찢은 책을 삼킬 때마다 또 묻습니다 그

때 누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과 생략된 문장은 같은 뜻인지 자신을 다 버린 자들과 아

무도 모르게 사라진 사람들의 기록은 어디에서 끝나는지, 나는 귀신을 쫓아 준다는 부적

을 붙이고 꽃잎처럼 가벼워졌는데

 

 

 

 

  소녀

 

 

 

  입 속에

  뱀을 숨기고

 

  입 속에

  음부를 숨기고

 

  불을 껐어

 

  촛불은 흔들리면서 커지고

  입 속의 새를

  후, 불어 껐어

 

  물방울 원피스를 입었어

 

  입 속의 뱀을 꺼내

  접시 위에 올려 놓았어

  하나는 구슬이라 불렀고

  둘은 달팽이라 불렀어

 

  나머지는,

  아무도 모르게 삼켰어

 

  말하지 마, 너만 알고 있어

 

 

 

 

마지막 정원사

 

 

  코너 식물원

  밖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식물원은 조용하고 가끔 병든 고양이가

들어온다 군데군데 죽은 나무가 서 있다 나무들이 모두 죽었다는 건 루머다 철 지난 국

화가 있고 나무는 나무의 말만 필요할 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의 눈은 흔들림

이 없다 흐린 눈으로만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정원사의 아이

  풀밭에 눈을 감고 손수건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누군가 등 뒤에 죽은 쥐를 놓고 사라

졌다 쥐를 가방에 넣고 눈을 감는다 하나, 둘 다음은 손수건이야 울지 마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 목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아 손이 얼었고 숲은 더 어두웠다 눈을 감아도 트럭은

오지 않아 누군가 등 뒤에 목 잘린 염소를 놓고 사라졌다 피가 흐르는 염소를 가방에 넣

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닫히지 않는 가방 술래는 밤새 염소의 흰 눈알을 토했고 온몸이

가려웠다

 

  눈 먼 정원사

  술잔을 들다 멈춘 아버지는 내 책상 위의 달을 모두 태웠다 나는 날마다 벽에 걸린

아버지의 사진을 긴 송곳으로 찍었다 아버지의 돋보기로 내 눈을 모두 태워버렸다

마당 가운데 깊이 묻힌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가끔 죽은 사람이 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D

 

  나에게 오렌지는 세 개다 아니 네 개일 때도 있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당신의 상자 속에 얼마만큼의 오렌지가 있는지 빨간 팬지나 체조선수들은

 오렌지가 몇 개 필요한지 

 

  문예지에 실린 모르는 당신은 오렌지가 많아 아는 사람처럼 보이다가 달리는

 트럭에 깔려 박살난 오렌지의 기분이 들 때,

 

  혹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충분하고 윤리적인 잠을 자거나 일기를 쓰면서

 누구에게 한 표를 주어야 할지 생각하지만,

 

  오렌지를 다섯 개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솔직히 옥상보다 화장실에서 더 자주 바뀌고 세 번째 보다 네 번째가 더

 좋았다는 말은 모두 오렌지 때문이다

 

  무서워서 도망치는 오렌지의 꿈을 꾼 어젯밤, 당신의 순간들에는 몇 개의

오렌지가 있었나

 

  이런 시대에 오렌지를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오렌지 때문에 깃발이

흔들리고 옥수수가 익는 건 사실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뺨이 뜨거울 정도로, 웃거나 울겠지만, 8층에서 3층으로,

당신과 당신에게, 세 시에서 네 시로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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