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부터 그려 온 고영훈의 돌 그림의 역사는 줄잡아 25년여를 이어오고 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오랜 세월 그처럼 집요하게 돌을 그리도록 하였을까. '70년대에는 돌을 화면의 허공간에 띄워 그리다 '80년대 들어서는 펼쳐진 책 위에 질량을 강화하고 신비한 그림자의 이미지를 동반해서 그려왔다. 줄잡아 '90년대에는 돌뿐만 아니라 깃털, 날개, 사진과 같은 기록문이나 수집한 오브제들을 병설하는가 하면 이것들이 돌과 더불어 동등한 의미로 자리매김되는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이처럼 오랜 세월 우리의 삶 주변의 사물들을 그리되, 이것들과 경쟁하듯이 더 리얼하게 그리거나 아니면 공존하려는 시각으로 그것들을 작품에 직접 오브제로 도입함으로써 작품과 사물간의 틈새를 허물려는 일련의 시도 이면에는 '도대체 이러한 의도에 의해서 무엇을 노리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이 의문이 그의 작품세계를 앞에 했을 때 일어나는 것은 그가 그리고 있는 사물들의 형상이 한국과 서구의 미술사를 통틀어 소위 문명 세계에서 미술이 발상하게 된 이유를 다시 한번 반추하도록 재촉할 뿐만 아니라 그가 성취하고 있는 내용 또한 세계 회화사의 사례들과의 비교의 수준을 넘어 오늘의 역사와 상황, 특히 삶의 시간과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는 실로 의미심장한 면면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