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초하선인도(芭蕉下仙人圖) 종이에 담채 139.4*66.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작품은 6폭으로 이루어진 선인도 중의 한 폭으로, 이중 네 폭에는 여선(女仙)이 등장하고 있으며 두 폭에는 고사(高士)가 나타나 있다.
굵은 붓으로 농묵을 듬뿍 찍어 비교적 간결한 손의 놀림을 통해 유려한 필치로 완성해낸 작품으로서 그의 높음 기량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있다. 또한 ,우측 상단에 조희룡(趙熙龍)의 발문이 씌어 있어 그와의 친분이 녹아져 있다.
조희룡은 그의 저서 "호산외기(壺山外記)"에서 이재관을 상하백년에 다시없을 그림을 그린 인물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당시 최대의 안목 김정희도 이재관의 그림에 제발을 남기고 있어 비록 화원이긴 하지만 그가 이룩한 화경이 어떠하였는가를 대변하는 사례들이다.
이재관(李在寬 1783~1837)
자는 원강(元剛), 호는 소당(小塘)으로 ,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집이 가난하여 그림을 팔며 겨우 어머니를 봉양했던 사람이다. 소당은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그가 지닌 천재성은 스스로 옛 화법들을 터득하게 했다. 산수나 인물을 비롯한 자연의 모든 사물을 표현한 데에 참으로 뛰어난 바가 있었으며, 특히 인물초상은 대단한 솜씨를 발휘하여 헌종 2년(1836)에는 태조의 어진이 훼손된 것을 복원하였다. 이재관의 그림은 일본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어서 해마다 빠짐없이 동래관을 통하여 일본인들이 그의 그림을 사갔다.
이재관의 그림으로 유명한 것은 귀어도(歸魚圖)와 오수도(午睡圖), 송하처사도(松下處士圖), 파초하선인도(芭蕉下仙人圖), 금강산의 총석도(叢石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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