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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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도해'. 달마 대사가 갈대를 꺾어타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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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봇짐 하나 꿰찬 채 운수 행각에 나선 승려의 모습. 단원이 불교에 귀의한 직후 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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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야수'(성긴 수풀과 들물). '단원산수일품점'에 들어 있는 작품. 원말 4대가 중의 하나인 운림 예찬의 필법을 본따 그린 그림이다. 먹의 농담으로 넓은 들녘에 전개된 모든 정경을 빠짐없이 묘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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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이 그린 '구룡연'. 이 그림은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와 비교하면 단원이 겸재로부터 받은 영향과 차이뿐 아니라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발전과정까지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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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원투도'. 낭원에서 선도 복숭아라를 훔치는 동방삭을 그렸다. 기괴한 모습의 중국풍 신선이었던 동방삭을 평범한 얼굴로 묘사했는데, 이것이 바로 진경산수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우리 선조들의 당당한 문화적 자부심의 표출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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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휴기'(기생을 끼고 동산에 오르다). 중국 삼대 명문가의 하나로 꼽히는 동진의 사안이 기생과 함게 산에 오르는 장면이다. 단원 특유의 소나무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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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귀도'(무이산으로 노 저어 돌아가다'. 중국 복건성 남쪽에 있는 무이산으로 계곡을 유람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그렸다. 중국 풍경이지만 단원은 모든 것을 조선식으로 해석하고 단원식으로 표현했다. 50대 후반 경의 후기 작품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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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탑'. 내금강에 있는 수미탑을 그린 것으로, 정조의 특명을 받고 정조 12년(1788) 9월12일에 완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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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화청정'(연꽃과 고추잠자리). 단원은 사생할 때에도 초상화나 풍속화를 그리듯 섬세한 필치를 동원했다. 연잎 묘사에서는 서양화의 음영 기법을 도입한 흔적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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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매'(흰 매화). 단원은 산수나 인물 못지 않게 대나무나 매화 같은 사군자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 작품은 단원 사군자 그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사실성을 견지하면서도 통렬하고 강경한 기세를 담아냈던 조선 중기 묵매화풍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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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묘농접'(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 단원이 연풍 현감 재임 기간에 그린 듯 하다. 단원의 세심한 관찰력이 아니라면 이같은 순간적인 평화와 고요를 화폭에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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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구양자'(어미개가 새끼 개를 기르다). 조선시대에 개는 문인화가나 직업화가 모두 즐겨 그린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어미 개의 당당하면서도 모성애가 깃든 표정이 강아지들의 귀여운 모습과 동작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묘사가 철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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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희조춘'(꿩이 이른 봄을 희롱하다). 아지랑이 가물대는 초봄의 한 순간을 포착했다. 단원의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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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방학'(서호에서 두루미를 풀어놓다). 사물의 일부만 절치한 뒤 강한 사선과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화면을 거의 공백으로 남겨 시정과 상상력을 강조하는 단원의 후기 화풍이 잘 드러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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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봉취하'(축융봉에서 취해 내려오다). 예각으로 여러 번 걱어 치는 각지고 모난 필법이 많이 보이는데, 단원의 그같은 특징이 더욱 잘 나타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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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기호'(고승이 호랑이를 타다). 단원이 60세 전후에 그린 만년작으로 보인다. 붓가는대로 거침없이 그려낸 득의작으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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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출관'(노자가 함곡관을 나서다). 노자가 '도덕경'을 남기게 된 경위를 밝힌 '화호경'의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필선의 농익은 부드러움이나 극도의 감필법을 쓴 것으로 보아 '낭원투도'와 같은 시기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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