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이만섭
우리 미술 오천년에 산처럼 우뚝 서고 별처럼 빛나는 화가는 셀 수가 없다.
그림 또한 기록으로 본다면 조선시대 이전의 작품들은 고려 불화를 제외하면
거의 소실된 편이지만, 려말 공민왕의 그림 몇점이 특출한 화격을 보여주고
그 이전으로 예성강도라는 그림이 있다하지만 나는 아직 보지는 못했다.
고려시대 충신 익제 이제현이나 김부식 같은 이들이 매우 높은 수준의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가 있으나 정작 사료가 부족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초기에는 사대부가에서 그림을 일종의 천기로 여겼기 때문에
시서화를 능히 잘하는 선비라고해도 유득 그림만은 경계를 했으니
고사관수도의 저자인 인제 강희안같은 이는 그 자신 불세출의 탁월한 화풍을 이루고도
그림을 천박스러운 것이라고 스스로 폄하하기도 했던 것이다.
현동자 안견이 이용 안평의 꿈이야기를 무릉으로 그려낸 몽유도원도가 조선 전기의
그림다운 그림이라고 한다면 임란 이후 후기로 들어서면서 18세기에는 그야말로
우리의 르네상스인 진경시대가 도래했다. 이후 마침내 추사의 일격화풍이 이루어 낸
세한도 같은 작품이 후기의 대표적 그림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 미술 오천년에 그 많은 화가들 중에서도도 겸제 정선의 회화적 가치는
우리 미술의 영원한 백미라 아니할수 없다.
예술이 한때 꽃을 피운다는 것은 곧 우리의 고려청자가 그 맥락을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진경시대 겸제 정선의 그림이야말로 우리 미술의 정수가 아닐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대화가 청전 이상범은 누구인가.
그는 겸제 이후 이땅에 가장 탁월한 화가의 한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유라는 그는 우리의 산하를 가장 한국적 모습으로 창출해낸 화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그를 이당 김은호, 소정 변관식, 심향 박승무, 심산 노수현, 의제 허백련 등과 함께
근대 6대가 라고 부르지만, 그는 겸제시대의 삼제인 현제 심사정이나 관아제 조영석,
그의 문하생인 단원 김홍도 또 그 이후 오원 장승업을 뛰어넘는 특출한 독창적 세계을 연 화가라 할 것이다.
조선시대 그림들이 그 화풍이나 화격이 개자원 등의 서화이론에서 보여지는 전통에 억매인
중국적 그림이 사실은 대부분이였다. 이는 어쩔수 없는 문예현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은
우리의 예술적 창작행위가 전통을 밟아 그 범주속에서 진보없이 한길로 소화되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가령 현동자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회화적 사료적 가치가 비록 높다고는 하드라도
사실 그것은 송대의 화가 곽희풍의 산수도다.
피마준인 산의 형상이나 해삭순의 나무들이며 하얗게 단순 처리된 폭포의 물굽이 같은 점은
곽희의 조춘도에서도 쉽사리 발견 할 수가 있다.
이렇듯 화풍의 한계는 극복되지 못했던 점이 우리 그림의 커다란 아쉬움이라 할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겸제의 진경산수가 우리 산하의 모습을 독창적으로 아름답게 구현하였으니
이 얼마나 값지고 고귀한 일인가.
근대화가 청전 이상범의 역활은 바로 이점이라 할것이다.
화가가 인물을 그릴 때 전신사조를 바탕한다고 흔히 말한다.
형상은 물론 그 마음까지 그려야만이 진정한 인물그림이라는 것이다.
이 어찌 지당하지않는 말인가.
청전의 산수는 곧 우리 산하의 전신사조를 그렸다고 할 것이다.
금방이라도 물기가 배어나올 듯한 습윤한 먹색의 나무들이며 스산한 강언덕,
향토성 짙은 그의 그림들은 언제 보아도 영락없는 우리만의 것이다.
그러면서도 수묵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를 면밀하고도 아름답게 보여준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심전 안중식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워
전무 후무한 선전의 기록도 그의 예술행위가 보여주는 특출성이라 할 것이다.
나는 가끔 청전 이상범의 불후의 명작 유경(幽境)을 화첩을 통해서 보곤 한다.
예의 소를 몰고 새벽길을 가는 한 농부의 그윽한 삶의 길이 끝없이 펼처져 있다
그의 예술의 길, 청전 이상범의 그림이 나의 삶의 의미를 일깨운다.
06.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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