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estern painting

[스크랩] 소나무 그림/김경인 作

율카라마 2009. 12. 16. 10:40

 

 

                                                                                   자화상

 
 

 

'소낭구'그림의 세월  ... 김 경인 

나의 '소낭구' 그림 얘기는 91년 여름, 정선에서 비롯된다.
틈만 나면 싸다니길 좋아한 역마살이 산 높고 물 맑고 인심 후덕한, 강원도 정선(본인은 명예 군민임) 땅에 죽치고 지내기로 마음먹은 여름이었다. 나는 70년대 초 그림에 대한 관심과 소재는 '한국성'에 있었고 그것을 사회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나름대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로에서 설자리를 찾게 되었다. 거의 20년 간은 인간을 주제로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을 그렸는데, 나이 50이 넘으면서 그 작업에 타성이 생기게 되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고심하고 있던 터라, 정선을 찾은 일은 외형적으로는 그림 소재와 표현의 전환점이 된 셈이다. 이젠 교통사정도 좋아지고 각종 매스컴에 의해 잘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그렇게 소개되면 시민의식이 결여된 인간들에 의해 자연은 파괴되고 오염되게 마련이다. 영월의 동강도 그렇게 파괴되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선읍에서 동면을 지나면 유명한 소금강 골짜기에 닿는다. 그 끝자락, 언덕배기 너머, 낙화암같이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나타나고 그 꼭대기에 노송 한 그루가 있다. 이 몰운대 바위 틈에 100년이 넘은 벼락맞은 나이배기 '소낭구' 한 그루가 서 있어, 그 아래 강물을 굽어보고 있다. 정선에 머무르는 달포 가량 그곳을 자주 찾았고 그 늙은 소낭구와 둘이 되어, 하루 해를 넘기는 일이 잦았다. 100호 캔버스에 그 노송을 그렸고, 그 화면에 이렇게 썼다. "'상서로운 기운 감도는 몰운대 꼭대기, 노송 한 그루, 영겁성상(永劫星霜), 세파(世波), 부둥켜안은, 고고(孤高)한, 자태(姿態)의 빛남' 1991. 정선에서".

 

나는 그때 한국성이란 화두(話頭)를 짊어지고 다녔는데 고려자기나 조선백자, 기와집 추녀나 단청, 한복의 선등 문화유산의 형태는 그 시대 선조들의 것이지 그 외형을 그대로 모방 답습하는 것이 곧 전통을 잇는 방법이 아니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조상들이 살아왔던 자연환경과 생태에서, 한국성의 숨결과 정신을 찾을 수 있다는 가설을 갖고 있었는데, 소낭구를 찾아 전 국토를 돌아다니는 동안 소낭구의 멋과 기(氣)에 취해 그것은 이미 물질을 넘어 곧 내 식구이면서 언제나 외경스러운 대상이기도 했다.

 

한번은 춘양 지방 가는 길에 한 시골식당에서 동네 노인들을 만났고 여느 때처럼 오래된 소낭구에 대해 물었다. 별 신통한 정보를 접하진 못했지만 보신탕을 먹고 있는 나에게 한 노인이 보신탕과 당산나무는 같이 하는 게 아니다. 화를 당한다는 귀띔을 해 주었다. (오래된 낭구들은 사람들이 모시는 당산나무가 많다) 십년여를 즐기던 보신탕을 끊게 된 사연 중의 하나다. 토종개들은 덩치 큰 도사견 등과 교배시킨 뒤 극히 좁은 우리에 가둔 채 운동을 못하게 하여, 근수(무게)를 늘려 팔려는 나쁜 상혼으로 해서 그 견공들은 스트레스 덩어리일 것이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은 그 독성을 고스란히 섭취해야 하는 딱한 세상이다. 어느 때는 노송 한 그루를 찾아 낭구 곁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내리고 늙은 노송이 느슨한 시선으로 지쳐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미소짓고 있을 때도 있었다. 하찮은 나그네 하나가 헐레벌떡 땀흘려 손짓이 별나게 보여서 였을까, 소낭구는 늙어 갈수록 멋과 품위와 꿋꿋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금강송의 그 당당하고 높은 격조, 경주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안강송의 솔밭에 앉아있노라면 소낭구들끼리 얽히고 설켜 합창이라도 하듯 소란스러운 리듬을 자아내고 있다. 소낭구의 춤사위가 자유롭다. 신라 천년의 고도가 번창했었고 그에 따른 반듯한 소낭구들은 목재용으로 베어져 구부러진 나무들만 남아 천년을 흘러, 오늘의 안송강이 되었다는 학자의 해설이 생각난다. 물론 해송(곰솔)은 그 억세고 강인한 형태에서 모진 바다 바람을 막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형태와 지역에 따라 우리나라 소낭구는 6가지 모양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서로의 특징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사람들은 21세기를 과학기술과 물질의 풍요로 밝은 지구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반면 오존층이 파괴로 남극의 빙하가 녹아 내리고 지금도 이상기온과 산성비가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며 열대 우림이 사라지고, 동·식물군이 멸종되고 있다. 인간들의 한없는 욕망과 교만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소낭구도 산성비와 솔잎혹파리. 무자비한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 가고 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바위와 조그만 조약돌 하나에도 생명의 존엄이 있음을 믿어온 동양정신은 위대하다. 시행착오의 서구 문물의 가치와 한계가 보이는 것만 같다. 나를 소낭구를 그리게 이끌어 주었던 몰운대 노송이 웬일인지 몇 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솔잎이 누렇게 물들면서 600년의 삶을 마감하였다. 생과 사의 경계를, 남은 형상으로서 상징하며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새 천년에는 사람들이 자연에 겸허한 마음의 세월로 닦아 서기를 바란다. 한국 소낭구의 기상을 닮아 세계 속의 소낭구 같은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 고목나무 뜨락
글쓴이 : 고목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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