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작품은 서예세상에서 열리고 있는 제9회 세계서예축전에 출품한 소현 이복춘선생의 작품입니다.
첫눈(新雪)
이언적(李彦迪)
新雪今朝忽滿地(신설금조홀만지) 첫눈이 오늘 아침 땅을 가득 덮으니
怳然坐我水精宮(황연좌아수정궁) 황홀하게 수정궁에 나를 앉혀 놓았구나
柴門誰作剡溪訪(시문수작섬계방) 사립문엔 누가 섬계(剡溪)를 찾았을까
獨對前山歲暮松(독대전산세모송) 앞산의 섯달그믐 소나무 나 혼자 마주하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흰눈이 밤새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면 황토빛 땅은 은세계가 된다.
그래서 시적화자는 황홀하게 자신을 수정궁에 앉혀 놓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세 번째 구(句)는 서성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인 왕휘지(王徽之)에 읽힌 고사이다.
왕휘지가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자신이 거주하던 산음에서 먼 섬계(剡溪)에 살고 있던 친구인
동진의 문인화가 대규(戴逵)가 그리워서 배를 타고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밤새 배를 저어 정작 친구의 집 앞에 이르자 배를 돌려 돌아왔다.
다른 사람이 그 까닭을 묻었고, 그의 답변은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원래 흥을 타서 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가는 것이니(乘興而來 盡興而反)
어찌 꼭 친구를 볼 필요가 있으랴".
따라서 세 번째 구에서 회재 또한 '내 친구 중 누가 왕휘지처럼
지난밤에 흥이 나서 나를 찾아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았을까'하는
은근한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자기를 찾아와 줄 생각을 하는
고상한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마지막 구에서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가 연상된다.
한해가 다 저물고 햇살이 적어지면서 수목들은 나목이 되어간다.
여름철 잎이 풍성할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시린 겨울 에 잎이 모두 낙엽되어 떨어진 뒤
눈밭에 홀로 서 있는 처지가 되니 찾는 이가 없어진다.
그러나 많은 나무 가운데 소나무는 홀로 푸른 기상을 잃지 않고 있다.
작자는 여기서 자신의 정신적 지향을 소나무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일수록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운 법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겨운 벗이 있다면 얼마나 훈훈해 질까
이 시를 읽으신 뒤 오늘은 왕휘지처럼
그리운 벗을 찾아 정겨움을 나누시기 바란다.
이언적(李彦迪1491~1553)
문신. 학자. 자 복고(復古). 호 회재(晦齋). 본관 여주(驪州).
사간(司諫) 재직시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 그 일당에 의해 파직된 뒤,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심했다.
김안로 일당이 거세된 후 재등용, 좌찬성. 원상 등을 역임했으나,
윤원형(尹元衡) 등의 모함으로 강계(江界)로 유배, 그 곳에서 생을 마쳤다.
성리학자로서 퇴계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에 <회재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위에서 사용한 글씨폰트는 난정 이지연선생의 궁체 폰트입니다.
첫눈이 올 무렵은 대개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이어서 오는 듯 마는 듯 감질나게 내리거나 절반쯤 녹은 눈비의 형태로 내릴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시에서처럼 첫눈은 밤사이에 수북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야 반가움과 경이로움이 큰 법이다. 그래서 작자는 황홀하게 자신을 수정궁에 앉혀 놓은 것 같다고까지 하였다.
세 번째 구는 유명한 고사를 사용하였다. 명필 왕희지(王羲之)와 그 아들 왕휘지(王徽之)는 부자간에 고상한 풍모로 유명하다. 그 왕휘지가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날 밤에 문득 섬계(剡溪)에 살고 있는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나서 배를 타고 찾아 갔다. 그러나 정작 문앞에 이르러서는 홀연 되돌아오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의 대답이 만고에 회자된다. “원래 흥을 타서 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가는 것이니(乘興而來 興盡而反) 어찌 꼭 친구를 볼 필요가 있겠소”. 논리적으로 따지면 실없기 짝이 없는 행동이지만 작위(作爲)에 얽매이지 않는 유유한 태도는 가히 선승(禪僧)의 경지이다.
따라서 이 세 번째 구는 ‘내 친구 중 누가 왕휘지처럼 지난 밤에 흥이 나서 나를 찾아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았을까’하는 은근한 기대를 드러낸 것이다. 대규의 입장에서는 친구가 왔다 갔는지 전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한밤중에 자기를 찾아와 줄 생각을 하는 고상한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작자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 구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를 연상케 한다. 한해가 다 저물어 온갖 나무들은 낙엽지고 앙상한 모습인데 앞산의 소나무는 꿋꿋한 자태로 푸름을 잃지 않고 있다. 회재(晦齋) 이언적은 조선 전기의 유명한 성리학자이다. 여기의 소나무는 바로 자신의 정신적 지향을 나타낸다.
■어구풀이
忽:홀연, 갑자기. 怳然:황홀하게. 水精宮:수정으로 장식한 궁전. 水精은 水晶과 같음. 柴門:사립문. 剡溪: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조아강(曹娥江)의 상류 명칭. 歲暮松:한 해가 저물어가는데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
김영봉·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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