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날마다 떠난다/ 이향아

율카라마 2013. 6. 4. 16:46

 

      

 

 

 

날마다 떠난다/ 이향아

 

 

날마다 떠난다. 길에서 길로, 안개 속으로

지평선 너머 숲의 발부리, 발부리를 적시는 그윽한 늪으로

이만큼 왔으면 수만 리 장천이지 그래도 날 밝으면 다시 길을 재촉한다

자꾸 떠나는 것은 지나온 길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가거라 등 밀어 쫓겨서도 아니라

어딘가 먼 데서 종소리가 들리고 펄럭이는 기폭에 새겨진 이름

수수께끼처럼 엮여서 아득히 간다

여행 가방은 너무 크거나 작고 나는 번번이 철새처럼 춥다

이만하면 객지에 낯익은 거지

새로 만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금세 돌아서면 이별이 깊다

두고 온 길마다 패인 발자욱 행여 주저앉아 살고 싶을까

오래 묵은 버릇처럼, 못 고칠 중병처럼 이내 돌아올 사람처럼

휘휘 떠난다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만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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