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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현서의「나의 사랑 단종」감상/ 김석환

율카라마 2015. 7. 26. 16:52

유현서의「나의 사랑 단종」감상/ 김석환

 

 

나의 사랑 단종

 

  유현서

 

 

눈물로 맑힌 당신의 청령포에 와 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천리 길이지요 마음의 곤룡포는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오르셨나요

 

용안을 적시던 눈물은 강물 높이를 한층 더 부추기고요 흐르는 물길은 수천수만의 낭떠러지를 폭포수로 내칩니다

 

그때 물수제비를 뜨던 조약돌도 여전히 붉은 피를 흘리나요

발을 뗄 때마다 돌덩이들이 일어나 내 가슴을 때립니다 쇠지팡이를 의지한 노송 한 그루가 당신을 따라 점점 이울어집니다

 

노산대에서만이 한양 하늘이 그리웠겠습니까

어린 소나무들만이 당신의 백성이었겠습니까

 

관음송 발치에서 당신처럼 앉아 옷고름을 풀어헤칩니다 당신의 눈물을 고요히 받아 적어보나 아린 문장만이 내 빈 젖을 빨 뿐

 

나는 당신의 아내 당신의 어머니 당신의 애인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당신을 싣고 서울로 향합니다

 

 

            —웹진《시인광장》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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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는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17세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관을 빼앗기고 유배되었다가 끝내 사약을 받고 죽은 비운의 왕 단종의 애사가 서린 곳이다. 그 역사적 사건을 원 텍스트로 삼아 패러디한 이 시는 청령포의 풍경을 비유적으로 묘사하며 단종에 대한 추모의 정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몸은 비록 천리 길을 왔으나 마음은 아직 곤룡포를 입은 채 “백마를 타고 태백산”을 올라 한양의 궁궐로 되돌아갔을 그 옛날의 단종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물수제비를 뜨며 아픔을 달래던 단종을 그리다가 가슴 깊이에서 분노와 슬픔의 “돌덩이들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불의한 권력에 폐위되다 못해 외진 곳에 유폐되었다가 끝내 죽음을 앞에 두고 “관음송 발치”에 앉아 눈물을 흘렸을 단종을 생각한다. 그리고 빈 젖이라도 물려주고 싶은 안타까움에 옷고름을 푼다. 세월은 흘렀으나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시신마저 버려져 되돌아가지 못한 단종의 비극을 새기며 서울로 발길을 옮긴다.

 

 

  김석환 (시인)

 

//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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