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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육사(李陸史)] 반묘

율카라마 2011. 9. 7. 20:16

반묘 - 이육사(李陸史)



어느 사막의 나라 유폐된 후궁의 넋이기에
몸과 마음도 아롱져 근심스러워라

7색 바다를 건너서 와도 그냥 눈동자에
고향의 황혼을 간직해 서럽지 않느냐

사람의 품에 깃들면 등을 굽히는 짓새
산맥을 느낄수록 끝없이 게을러라

그 적은 포효는 어느 조선때 유전이길래
마노의 노래야 한층 더 잔조우리라

그보다 들안에 흰나비 나직이 날아올 땐
한낮의 태양과 튤립 한 송이 지킴직하고


<인문평론>194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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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李陸史) / 1904∼1944


본명 이원록(李源祿)

시인. 독립 운동가. 개명은 활(活), 육사는 호,
경북 안동에서 출생. 보문 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운 후 대구 교남 학교에서 수학하고, 1925년에 독립 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담하였다. 1926년에 베이징으로 가 베이징 사관학교 제 1기생이 되었고, 다음해에 귀국했으나 조선 은행 폭파 사건에 연류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그 때의 감방 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에 다시 베이징으로 가 베이징 대학 사회학과 재학 중 루 쉰 등과 사귀면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에 귀국하여 육사라는 이름으로 처녀작 [황혼]을 <신조선>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 1937년에 윤곤강,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했으며, 그 무렵 [청포도] [교목]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43년 중국에 갔다가 다시 귀국했으나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는 일제 암흑기에 최후까지 민족의 양심을 고수하였으며,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신음하는 민족의 비극을 상징주의적이면서 화려한 시풍으로 노래한 민족 시인이었다. 그 밖의 작품에는 [광야] [절정]등이 있다. 1946년에 유고 시집 <육사 시집>이 간행되었다.
출처 : 詩井
글쓴이 : 銀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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