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쓰는 詩
이만섭
바다에 시를 쓴다
햇살 눈부신 날
창이란 창은 모두 열어
파도살에 접안해 놓고
흉중의 미늘을 바다에 내린다
파도는 검푸른 지느러미를 달고
굼실거리며 쫓아와서
창변에다 하얀 묘비명을 쓰고 달아난다
생의 날등에서 부서지는 파도처럼
나도 나만의 시를 쓰고 싶다
반짝이는 은빛 날개를 달고
꿈을 유영해 온
언어의 고기떼들을 낚아
파닥거리는 생명의 시를 쓰고 싶다
-내 고향 후포 /이만섭
그리운 것은 등 뒤로 온다
생각만 해도 시큰해지는 콧등
돌아서면 부르지 않아도
먼 기억에서 흘러온 물소리는
옷소매 잡고 쫓아와서 허리를 감싼다
부드러운 뻘의 손끝은
밀물에 잠기어 있어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둥켜 안는다
소요산 가랑이 사이에 걸린 해가
썰물의 하구에 산그림자 내리면
쪽진 머리에 바지락 가득 이고
갯벌을 밟고 오시는 어머니
어머니, 당신의 모습이
노을 비낀 그림자로 뒷마당에 와 닿는다
밀물은 허겁지겁 따라와
밤새도록 뒤란에서 노닥거리다가
아침이면 되돌아 가고
바다는 훤히 속살을 보여주며
눈 부신 햇살 아래를 걸어나오라 한다
후포여, 그리운 내 고향 후포여,
-흥애고모 /이만섭
흥애고모는 상포 처녀다
얼굴이 앵두처럼 곱고 이쁘게만 해서
우리 집에 놀러오면
할머니는 오금에다 붙여 놓고
꽉- 깨물려고만 하셨다
"아무리 봐도 너는
어째 너그 어매도 안닮고
너그 아부지도 안닮고
참 별종이다. 야" 하시며
"눈동자는 검고 입술도 붉고 도톰하니
시집많큼은 당초 늦게 가거라"
당부하셨다
고개를 갸웃둥 하던 흥애고모,
집으로 돌아 갈 적에
할머니는 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어쩌끄나 요 이쁜 것이
갯바람에 끄을릴까봐 나는 꺽정이다. 잉"
그리 말씀하셨다
-바다와 술잔 /이만섭
석포리 가는 길에
소금창고를 지나다 보면
커다란 물레가 바닷물을 품는다
세상의 물은 담아서 쓰여진다
한 종지 술잔인들 무엇이 다를까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몸을 뎁히는 바닷물과
가슴을 뎁히는 술잔이,
바다를 생각하면
바다라는 말이 술잔처럼 나를 채운다
마시지 않고 취하는
푸른 빛이 아닌 푸름으로 바다는
어느 한순간도 푸르지 않을 때가 없었으니
술잔을 대하면 술잔을
나는 그토록 비워내려고만 하는 것일까,
취한다는 것은
마음을 깊은 곳에 두려는 까닭이다
바다가 그렇듯이 술잔도 그렇다
바다는 대할 때마다 마음을 들뜨게 하고
술잔은 대할 때마다 기분을 들뜨게 한다
그런 뒤에
바다는 마음을 다스리고
술잔은 몸을 취하게 한다
바다가 몸을 붙잡아 놓은 자리에
술잔이 가슴을 풀어놓는다
-소금에 대한 소고(小考) /이만섭
한 톨의 입자라 해도
세상에 올 때 약속한 것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인데
바다는 그것을 감추었다
혹은, 말하지 않았다
세상은 스스로 규명해주었다
이치를 보이고 싶었던 것일 게다
수수만년 동안 바닷고기들이
함께 몸을 담그고 살아온 내력은
그것에 영원을 담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모르는 자는 오직
음미함으로서 진실을 깨닫는다
빛이란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어느 때가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상 밖에서 유기물이 썩어갈 때
소금만이 그것을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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