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목책
김명은
소녀들이 모바일 게임을 하는 소녀를 불러내어 교복을 벗기네 담장은 장미향으로 붉고
소녀들이 꽃부리 모양의 술잔을 돌리네 취한 문장을 술병 속에 가득 채우네 킬킬대고 재잘거리며 둥둥 떠다니는 한 떼의 구름, 권태로운 바람이 구름 한 장을 찢고 칼날로 긁어대네 침을 뱉으며 짓밟네 구름의 뺨이 붉어지네 병 쪼가리가 수소문처럼 흩어지네
구름들이 담장을 넘나드는 건 오래되고 사소한 놀이 푸른 이파리들이 꽃을 피해 뛰어내리고 뒤따라 떠오르는 몸, 소녀가 담장 안으로 몸을 던지네 떨어지네 소녀의 뺨에 묻은 아스팔트의 검은 모래가 빛나고 달빛이 손을 뻗어 뻗어가는 넝쿨을 들어올리네 죽은 시간이 줄기를 따라 올라오네
장미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공범자의 모습이네 입술이 찢긴 소녀는 가시가 박힌 팔을 내려놓네 각진 화단턱에 올려놓은 소녀의 갸름한 턱은 집 쪽으로 떨어진 붉은 장미꽃잎 같고, 무성한 가시와 이파리가 외줄을 타고 담장 안과 밖으로 흔들리네
소녀를 업은 달이 힘을 다해 계단을 오르네 닫힌 문을 향해 어린 장미들의 얼굴이 줄지어 쓰러지네
—《시작》2012년 여름호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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