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詩語들 /이만섭

율카라마 2013. 1. 10. 10:09

語들

 

이만섭

 

 

 

신국의 말은 천 개의 귀를 지니고 있어서

아무도 모르게 구석에 가서 중얼거린다

그런데 벽과 벽 사이 주름 접힌 귀가 있다

다시 창가로 나와 내 흘린 말들을 주어 드는데

문밖의 새와 나무가 비켜보고 있다

새도 나무도 없는 빈들에 나가

소리치듯 혼잣말을 허공에 쏟아내는데

지나가던 바람이 채어 간다, 너의 것이 아니라는 듯

어디에도 함부로 내놓을 수 없는 말들,

길을 걸으며 무시로 내뱉은 그간의 말들은

들풀이 듣고 샛강이 듣고 미루나무가 들었을 터이니

나의 산책길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저 귀들이 쫓아와

예리한 날로 나를 베이려 든다

입때껏 나는 궁핍을 채우기 위해

저들이 지닌 말들을 조탁하다가 허전함만 키웠는가,

오늘은 강가에 가서 내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강은 이미 알아차린 것은 아닐,

이제라도 내가 흘린 말들의 역순을 밟아

그간의 부끄러움을 거둬들이며

내 말을 관통하는 저들의 귀를 배워야겠다

 

 

『시로 여는 세상』2012년 겨울호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