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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낙서, 내 귓속으로 날아든 새
김중일
주인도 없이 늙은 청어가 구워지는 저녁 남은 뼛조각은 고양이에게 던져주고 결백하신 신께서도 자주 묵어 가는 객잔 그 어떤 죄악도 하룻밤 덮을 수 있는 이불을 내어준다는 객잔, 장롱 속에서 피 젖은 이불처럼 흘러나온 구름들의 객잔으로 소리 소문 없이 찾아든 조문객이 내 영정 왼쪽과 오른쪽 머리맡에 두 송이 꽃을 놓고 갔다
그날 밤 이후 내 두 송이 귓속으로 누가 힘껏 던진 돌처럼 새가 날아들었다 이석(耳石), 내 귓속에 탁란된 작은 알 하나 버려진 그 지구 속에는 선연한 학살의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밤새 새가 내 귓속에서 홰를 친다 흑판에 낙서처럼 그려진 공중을 모조리 지우는 바람의 손길처럼 이제 나는 내 낡은 외투보다 비좁은 이 객잔을 떠날 것이다 찢긴 초록의 외투와 야간 공습 이후 남은 비행운으로 짠 성긴 스웨터만이 붉게 물든 채 새벽의 침대 위에 놓였다
서울에서 다마스쿠스, 다라에서 가자 간 난민들의 버스는 내 귓바퀴를 따라 나선형으로 돌아 내려오고 깨진 차창을 열자 누가 던진 돌처럼 내 귓속으로 날아든 새가 고막을 찢고 구름 밖으로 뛰어내렸다
—《현대문학》2013년 1월호 ------------- 김중일 /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국경꽃집』『아무튼 씨 미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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