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공중,낙서,내 귓속으로 날아든 새

율카라마 2013. 1. 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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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낙서, 내 귓속으로 날아든 새

 

   김중일

 

 

 

주인도 없이 늙은 청어가 구워지는 저녁

남은 뼛조각은 고양이에게 던져주고

결백하신 신께서도 자주 묵어 가는 객잔

그 어떤 죄악도 하룻밤 덮을 수 있는

이불을 내어준다는 객잔, 장롱 속에서

피 젖은 이불처럼 흘러나온 구름들의 객잔으로

소리 소문 없이 찾아든 조문객이

내 영정 왼쪽과 오른쪽 머리맡에

두 송이 꽃을 놓고 갔다

 

그날 밤 이후 내 두 송이 귓속으로

누가 힘껏 던진 돌처럼 새가 날아들었다

이석(耳石), 내 귓속에 탁란된 작은 알 하나

버려진 그 지구 속에는

선연한 학살의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밤새 새가 내 귓속에서 홰를 친다

흑판에 낙서처럼 그려진 공중을

모조리 지우는 바람의 손길처럼

이제 나는 내 낡은 외투보다

비좁은 이 객잔을 떠날 것이다

찢긴 초록의 외투와 야간 공습 이후 남은

비행운으로 짠 성긴 스웨터만이

붉게 물든 채 새벽의 침대 위에 놓였다

 

서울에서 다마스쿠스, 다라에서 가자 간

난민들의 버스는 내 귓바퀴를 따라

나선형으로 돌아 내려오고

깨진 차창을 열자 누가 던진 돌처럼

내 귓속으로 날아든 새가 고막을 찢고

구름 밖으로 뛰어내렸다

 

 

 

                       —《현대문학》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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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국경꽃집』『아무튼 씨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