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절반의 하루 /이만섭

율카라마 2013. 8. 11. 14:43

 

절반의 하루

 

 

이만섭

 

   

노동을 마치고 귀가하여 드러눕는 등을

저녁의 방이 쓰다듬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꿈꿀 때까지 또는 아침이 올 때까지

해와 달을 빌려 쓰는 삶인데

어느 시간인들 소중하지 않을까만

거리낌 없이 다리 뻗을 수 있는 자리에

생의 무게를 싣는다

천정은 별자리의 중심에 놓여 있고

창밖은 꽃나무들을 세워 봄밤을 기리고 있으니

네 벽에 올린 무성한 덩굴무늬 벽지며

 

 

벽시계가 제시간을 지키는 일이나

책장에 골똘하게 꽂혀있는 손때 묻은 서책들

눈에 보이는 것들 모두 나를 위해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절반의 하루를 동행하고자 깨어 있다

삶의 경계선을 넘어오는 생의 적들을 물리치고

신성한 노동으로 얻은 자유가

이만한 게 또 있을까

그 대가로 시작하는 소중한 하루

구들을 진 몸이 먼저 휴식을 통과 중이다

 

 

『시와 정신』2013년 여름호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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