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비싼 이유
—소더비 경매장에서 400억원을 호가했다는 뭉크의 ‘흡혈귀’,
원제는 '사랑과 고통'이었다
정채원
불타는 듯 피 흘리는 듯
여자의 붉고 긴 머리칼은 두 사람의 상반신을 덮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여자는 남자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있다
칼날 같은 달이
눈 감은 얼굴 위로
떠오르는 밤
오르골의 인형은
밤새 유리 발목으로 서 있다
태엽을 심장 쪽으로 힘껏 감으면
잔잔한 고통이 흘러나오고
토슈즈 안에 갇힌 채
뒤틀리고 짓무른 발가락으로
연습생 발레리나처럼 또 하루 빙글빙글
세상 근처를 배회할 수 있다는 듯
단단히 밀착된 채 아득히 먼
두 몸은
흡혈중이다
더 이상 울지 않는
망가진 오르골이 될 때까지
서로의 태엽을 감아주는 밤
—《미네르바》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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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원 / 서울 출생. 1996년《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시집『나의 키로 건너는 강』『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일교차로 만든 집』.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1894년, 'Vampire' 캔버스에 유채, 100.1☓110㎝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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