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고통이 비싼 이유 /정채원

율카라마 2015. 1. 26. 12:57

고통이 비싼 이유

                            —소더비 경매장에서 400억원을 호가했다는 뭉크의 ‘흡혈귀’,

                               원제는 '사랑과 고통'이었다

 

   정채원

 

 

 

불타는 듯 피 흘리는 듯

여자의 붉고 긴 머리칼은 두 사람의 상반신을 덮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여자는 남자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있다

 

칼날 같은 달이

눈 감은 얼굴 위로

떠오르는 밤

 

오르골의 인형은

밤새 유리 발목으로 서 있다

태엽을 심장 쪽으로 힘껏 감으면

잔잔한 고통이 흘러나오고

 

토슈즈 안에 갇힌 채

뒤틀리고 짓무른 발가락으로

연습생 발레리나처럼 또 하루 빙글빙글

세상 근처를 배회할 수 있다는 듯

 

단단히 밀착된 채 아득히 먼

두 몸은

흡혈중이다

 

더 이상 울지 않는

망가진 오르골이 될 때까지

서로의 태엽을 감아주는 밤

 

 

 

                         —《미네르바》2014년 겨울호

--------------

정채원 / 서울 출생. 1996년《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시집『나의 키로 건너는 강』『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일교차로 만든 집』.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1894년, 'Vampire'  캔버스에 유채, 100.1☓110㎝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