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동전 몇 닢 /마경덕

율카라마 2015. 2. 19. 11:50

 

동전 몇 닢

 

마경덕

​   머리맡 자리끼가 얼던 밤, 윗집 종란이 아부지가 죽었다. 밥상을 엎고 장독을 깨부수던 종란이 아부지, 호롱불 아래 설빔을 마무리하던 엄마가 혀를 찼다. "하필 정월 초하루에 출상이라니…" 바람에 문풍지가 울고 있었다.

 

  까치소리 차고 맑은 날. 뒷집 홀아비 지게꾼 학출이 아부지가 관을 지고 나왔다. 황달에 부황에 누렇게 뜬 학출이 아부지, 북어처럼 깡마른 팔뚝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나왔다. 주르르 관에서 물이 흘러 흠뻑 등이 젖었다.

  요란한 꽃상여도, 펄럭이던 만장도 요령소리도, 구슬픈 상두꾼도 없었다. 배에 물이 차 좋아하던 술 한 모금 못하고 세상을 종란이 아부지, 베옷을 걸친 종란이 엄마, 빡빡머리 종기오빠, 내 친구 종란이. 동생 종애가 울면서 장지로 떠나는 지게를 따라갔다. 때때옷 입은 코흘리개들 구경꾼처럼 졸졸 따라붙었다.

 

  언니가 손에 쥐어준 세뱃값 몇 닢에 종란이는 뚝 울음을 그쳤다. 울음을 따라가는데 동전 소리가 자꾸만 눈앞에서 짤랑거렸다. 눈부신 설날 아침이었다.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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