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유정(春雪有情) 1940
전영관
황도(黃道)는 경칩 지나 춘분으로 가는 길목
해 꼬리 길어지고 저녁 바람이 무뎌졌다 싶을 무렵에
그대는 나무에 귀를 댄 적 있는지
부글거리는 소리 들어 보셨는지
사내의 가슴에 파묻혀
두 박동이 일치하는 순간을 기다려본 적 있는지
손등의 혈관들이 푸른 밧줄 되어 친친 감겨온대도
까무룩 혼절한대도 그만일 것만 같은 적 있었는지
올올이 강건한 근육의 파도 위에 동동거리는 갈매기 되어
눈꼬리를 흔들지 않았는지
작은 새 그녀를 품에 넣고
목을 쓰다듬다가 팔딱이는 경동맥이 짚일 때
아아, 통정의 황홀에 현기증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야윈 채로 창문에 어룽거리는
벚나무 그림자가 꽃으로 만개할 때까지 포옹을 풀지 말자며
검지로 그녀 가르마를 정돈하던 새벽이 몇 번이었는지
끓어오르는 소리를 들어주지 못하고
분주한 마음을 매만져주지 못하고
권태롭다 돌아앉은 것은 아닌지
가버리는 사람의 스카프가 저만치 펄럭일 때야
제 안의 부글거림을 느끼고 당황했던 저녁은 아닌지
묻자니 내 사랑 부끄럽고 모른 척
아닌 척 시선을 거두자니 몰락한 날들이 황망한 오늘
서둘지 말라고 봄눈 내리네
그런 사랑을 차갑다 절망하지 않았는지
외면한 적 없는지 돌아보라고 봄눈 내렸네
겨울은 지났는데도 찬찬히 물을 올리고 꽃을 피우고
이파리 무성해질 나무에게 배우라고 봄눈 녹아버리네
질긴 겨울이나 지루한 봄이나 모두 다 잠깐이라고
천지간 눈은 흔적도 없네
—웹진《시인광장》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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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관 / 충남 청양에서 출생. 2008년 《진주신문》가을문예, 2011년《작가세계》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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