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순환하는 시 /윤석정

율카라마 2015. 10. 16. 08:34

순환하는 시

—골목

 

   윤석정

 

 

 

집 나간 옆집 개

이 골목을 지우면서 몰래

혼을 꺼낼 곳으로 숨었을 것이다

 

개 짖는 소리

문틈으로 몰려든 무더위보다

내 방안으로 끈질기게 들이쳤고

골목의 언저리를 물어뜯었다

 

미친 새꺄 시끄러

 

집 밖에서 날뛰던 개에게 나는 소리쳤다

개는 골목을 빠져나간 혼에게 짖었을 것이다

 

마비된 왼쪽 다리를 끌어당기며

그는 밤의 골목을 오갔고

골목에 찌든 지린내를 풍겼다

그는 날마다 골목의 편린들을 그러모아

대문 안쪽에 쌓아두었다

 

무더위가 시작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거나하게 취한 그가

세상 참 좆같다 소리쳤다

 

미친 새꺄 시끄러

 

누가 그에게 대꾸했다

밤의 골목을 물어뜯던

개 짖는 소리

 

늙은 개가 집을 나간 뒤

어느덧 무더위는 몰려나갔고

이 골목에서 그도 지워졌다

 

 

                     —《리토피아》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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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정 / 1977년 전북 장수 출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오페라 미용실』.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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