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고무신
추프랑카
저승길도 못 찾을 눈먼 색시를 화구(火口)에 밀어 넣고
끙끙 앓는 귀머거리 신랑 옆구리에
미처 넣어주지 못한 털고무신 한 켤레
발등가장자리에 털 두른 저것 함께 넣어줬으면 고무 타는 냄새 말고 털 냄새 말고 소리 냄새만 화르르 피어올라 귀머거리 신랑 귀부터 뻥 뚫렸을라나
장날에 같이 산 거라고, 검정양복 차려입은 상주가 기어이 구두대신 신고 온 저 털고무신까지 함께 태워줬으면 눈먼 색시 길눈이 단번에 탁 트였을라나
네 개의 눈과 네 개의 귀가
세상의 물음표를 반납하듯
더불어 보고 더불어 듣던 날을, 벗어놓고
화구(火口)의 불이 꺼졌다
이제
눈먼 색시가 붉은 고추를 골라 따던 밭으로
가야하는데
틀림없는 내용이 담긴, 백자 항아리 옆에 털고무신을 묻으러
가야하는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데
귀머거리 신랑은 의자가 놓인 이래로
줄곧 앉아만 있던 사람처럼, 앉아있다
⸻계간 《시현실》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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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프랑카/ 1966년 경북 달성 출생. 2017년〈매일신문〉신춘문예에 시로 등단.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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