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그 여자
손세실리아
숨을 데가 필요했던 게지
맺힌 설움 토로할 품이 필요했던 게지
절대가치라 여겼던 것들로부터
상처받고 더러는 깊이 배신당해
이룬 것 죄다 회색도시에 부려놓고
본향으로 도망쳐와
산목숨 차마 어쩌지 못하고
미친 듯 홀린 듯
오름이며 밭담이며 등대 이정표 삼고
바닷바람 앞장세워 휘적휘적 쏘다니다
설움 꾸들꾸들해질 즈음
덜컥 길닦이 자청하고 나선 여자
처처 순례객들 길잡이가 된 여자
그러다 정작 자신만의 오소록한 성소 다 내주고
서귀포 시장통 명숙상회 골방으로 되돌아온 여자
설문대할망의 현신이니
여전사니 말들 하지만
알고 보면 폭설 속 키 작은 애기동백 같은 여자
너울 이는 망망바다 바위섬 같은 그 여자
—《사람의 문학》2013년 봄호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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