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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도 가끔 유리에 손자국을 남긴다 (외 1편) /신용목

율카라마 2013. 4. 4. 15:42

나도 가끔 유리에 손자국을 남긴다 (외 1편)

 

   신용목

 

 

 

우럭이 棺 속에 누워 있다

몇 마리 우럭들, 우럭의 영혼처럼 헤엄친다―산 것들이 죽은 것의 영혼인 물속

연기의 문장으로 맴을 돈다

 

한 생이 무덤 속이었던 우럭

물속에서 타죽은 우럭

 

나도 가끔 창밖을 본다 철지난 부음처럼 낙엽은 날아와 부딪치고 흘러내리는

손자국, 한 칸씩 허공은 투명하게 질러놓은 관짝들이다

가을은 눈부시게 출렁이는 공동묘지,

 

물살이 씻고 가는 비문처럼

나도 가끔 방안을 맴돈다 문 없는 집을 세워놓고 무섭게 달려 나가는 추억들이

몸 여기저기를 찢어놓을 때

 

문이 없어 그 자리 뒤집히고 마는 마지막, 죽음은 육신만을 거두어가므로

나는 아무도 읽지 못할 문장

당신의 영혼으로 눕는다

 

활활 타는 장작의 머리카락,

어떤 죽음은 쏟아져야 한다 몸에서 풀려나는 연기처럼 삶이 딛지 못한 곳으로,

인근 재개발 문 없는 노장에서

 

나는 벽돌 하나를 집어들었다

 

 

 

복제된 풍경화

 

 

 

붉은 화폭,

화가가 찢고 들어간 자리―피가 다 빠져나간

도시

거리에, 사람들이 흘러간다

 

바람에게 눈을 달아주었다면 머리카락은 모두 망각 쪽으로만 휘날릴 것이다

뭉텅이씩, 풍경이 뽑혀나가는 자리에

가발처럼 심겨지는 어둠들

 

나는 부스럼 자국 훤한 뒤통수를 열고는 눈꺼풀 없는 눈 하나를 동그랗게 그려넣었다

 

그리고 이제는 눈물을 흘릴 차례,

오래 마르면

어둠도 유적이 된다 무덤의 풀밭처럼 머리카락 검은 갈기로 흩날리는 머리통 저 너머로

끝없이 달려가는 시간의 소실점이

 

거대한 한 점, 밤이 되어 돌아올 때

 

한 점의 캄캄한 화폭으로

뜬 눈일 때,

그곳에서 다시 맞는 아침처럼 아무리 달아나도 과거는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내 무덤에는 시체가 없을 것이다,

화가가 버리고 간

 

화구에 찔린 눈으로 아침이 온다

 

바람에게 머리카락을 달아주었다면

태양은 헝클어진 붓끝으로 갈겨질 것이다―빌딩은 얼마나 견고한 화폭인가

거리에,

붉은 눈망울들 흘러간다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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