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
김혜순
당신이 그곳을 푹 찌른다
나는 시방 나의 그곳을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곳은 아직 이름이 없으므로
당신은 모르는 그곳
그곳이 찔리면
나의 과거 나의 미래 나의 현재 그것의 동시성**과 비동시성***
아무튼 나의 사방팔방 이름 붙이지 않아서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생과 나의 생 바깥의 시간들 속에서 억울과 원한이 몰려온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온 인류 조상에게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죄를 범했던 순간들을 찾아낸다
매일 한 번 주사실에 누워 주사를 맞는다
침대에 누워 늘 내가 째려보는 천장의 한 조각 무늬
죽음의 침상에서 6개월 동안 할머니가 쳐다보던 그 무늬 하나
그 무늬가 전 세계로 흩어져간다
에이야피야라요쿠울 에이야피야라요쿠울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
그곳에서 심전도의 마지막 선에서 무늬들이 발아한다
사방연속무늬가 병실을 넘어간다
5월에 나무들이 이파리를 내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그리하여 나는 나의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을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싶다
당신이 문병와서 또 그곳을 푹 찌른다
내 이름은 이제 사방연속무늬
내가 시계를 차면
전 세계로 번지는 시계
전 세계가 시계를 찬다
내가 기차를 타면
내게서 사방으로 기차가 흩어져 간다
내가 머리를 빗으면 사방으로 내 머리칼이 흩어져간다
전 세계가 당신의 무례로 부르르 떨며 두 줄 레일 위를 달린다
천지사방으로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이 흩어져간다
억울한 이야기들이 내 소녀 적 긴 머리채처럼 땋아져
전 세계를 한 바퀴 돈다
그 이야기가 아이슬란드 빙하까지 간다
그러나 내가 돌아누우며 베개를 끌어안을 때
순간적으로 줄어드는 하나의 작은 무늬
그 이름 에이야피야라요쿠울
나는 그곳의 이름을 모르지만
그곳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안다
정말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는 무늬 하나의 시작
지구에 해가 져본 적 없듯이
밤이 오면 이 해가 어디 갔나 내가 둘러보듯이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은 에이야피야라요쿠울에 있다
그곳까지 뻗치는 사방연속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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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y-yah-fyah-lah-YOH-kuul
** synchronism
*** nonsynchronism
—《시인수첩》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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