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무늬 /김혜순

율카라마 2013. 3. 31. 13:27

무늬

 

      김혜순

 

 

 

   당신이 그곳을 푹 찌른다

   나는 시방 나의 그곳을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곳은 아직 이름이 없으므로

 

   당신은 모르는 그곳

   그곳이 찔리면

   나의 과거 나의 미래 나의 현재 그것의 동시성**과 비동시성***

   아무튼 나의 사방팔방 이름 붙이지 않아서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생과 나의 생 바깥의 시간들 속에서 억울과 원한이 몰려온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온 인류 조상에게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죄를 범했던 순간들을 찾아낸다

 

   매일 한 번 주사실에 누워 주사를 맞는다

   침대에 누워 늘 내가 째려보는 천장의 한 조각 무늬

   죽음의 침상에서 6개월 동안 할머니가 쳐다보던 그 무늬 하나

   그 무늬가 전 세계로 흩어져간다

   에이야피야라요쿠울 에이야피야라요쿠울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

   그곳에서 심전도의 마지막 선에서 무늬들이 발아한다

   사방연속무늬가 병실을 넘어간다

   5월에 나무들이 이파리를 내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그리하여 나는 나의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을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싶다

 

   당신이 문병와서 또 그곳을 푹 찌른다

   내 이름은 이제 사방연속무늬

   내가 시계를 차면

   전 세계로 번지는 시계

   전 세계가 시계를 찬다

 

   내가 기차를 타면

   내게서 사방으로 기차가 흩어져 간다

   내가 머리를 빗으면 사방으로 내 머리칼이 흩어져간다

   전 세계가 당신의 무례로 부르르 떨며 두 줄 레일 위를 달린다

 

   천지사방으로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이 흩어져간다

 

   억울한 이야기들이 내 소녀 적 긴 머리채처럼 땋아져

   전 세계를 한 바퀴 돈다

   그 이야기가 아이슬란드 빙하까지 간다

 

   그러나 내가 돌아누우며 베개를 끌어안을 때

   순간적으로 줄어드는 하나의 작은 무늬

   그 이름 에이야피야라요쿠울

 

   나는 그곳의 이름을 모르지만

   그곳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안다

 

   정말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는 무늬 하나의 시작

   지구에 해가 져본 적 없듯이

   밤이 오면 이 해가 어디 갔나 내가 둘러보듯이

   에이야피야라요쿠울은 에이야피야라요쿠울에 있다

 

   그곳까지 뻗치는 사방연속무늬

 

 

     ————

     * ay-yah-fyah-lah-YOH-kuul

     ** synchronism

     *** nonsynchronism

 

 

     —《시인수첩》2012년 겨울호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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