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이규리

율카라마 2013. 9. 8. 15:18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이규리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꽃피는 날은 여러 날인데 어느 날의 꽃이 가장 꽃다운지 헤아리다가

어영부영 놓치고 말았어요

산수유 피면 산수유 놓치고

나비꽃 피면 나비꽃 놓치고

 

꼭 그날을 마련하려다 풍선을 놓치고 햇볕을 놓치고

아,

전화를 하기도 전에 덜컥 당신이 세상을 뜨셨지요

모든 꽃이 다 피어나서 나를 때렸어요

 

죄송해요

꼭 그날이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냥 전화를 하면 그날이 되는 것을요

꽃은 순간 절정도 순간 우리 목숨 그런 것처럼

순간이 순간을 불러 순간에 복무하는 것인데

 

차일피일, 내 생이 이 모양으로 흘러온 것 아니겠어요

 

그날이란 사실 있지도 않은 날이라는 듯

부음은 당신이 먼저 하신 전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이미 꽃이라,

당신 떠나시던 날이 꽃피는 날이란 걸 나만 몰랐어요

 

     

 

ㅡ 웹진 『시인광장』(2013. 9)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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