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
송경동
나는 죽은 사람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이미 죽었다고
죽은 지 오래라고 해도 믿지 않는다
탁, 소리가 나게 물컵을 탁자에 놓으며
깨질 파도처럼 출렁이는 소리로
이봐, 난 죽었다고 소리쳐도
잔잔하게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모든 조간신문의 기사들이 누군가의 부음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저 많은 고층빌딩들이 누군가들의 비석이 아니었단 말인가
저 무수한 화폐다발들이 누군가의 명부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저 모든 합의서들이 죽음에 대한 확고한 약속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저 공장굴뚝 흰 연기들이 또 누군가의 뼈와 살을 태우는 화장장의 불꽃이 아니었고
저 쌓여가는 고지서들이 일상의 사망확인서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저 모든 뜨거운 입맞춤들이 작별의 전조가 아니었단 말인가
너와 내가 나눈 모든 약속의 말들이 이별의 조사가 아니었단 말인가
이봐, 난 죽었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들어 줄 사람이 없다
—《발견》201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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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 1967년 전남 벌교 출생. 2001년《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 『꿀잠』『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만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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