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고엽제 노래-못의 사회학 1
참외는 노랗다
참외는 참회한다
제 속의 많은 씨만 헤아리기에는
그 죄가 너무 깊고 달다
고엽제는 오렌지색이다
에이전트 오렌지*
빈 드럼통만 굴리는 속죄는
소리만 크다
많은 씨를 헤아리지 못했던
그 죄가 천벌이다
*
파월 참전용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고엽제에 폭로되었다
참호 속보다 더 농익은
꽉 막힌 정글을 터주던 저놈들이
40여 년 지난 지금
늙은 전우 찾아 하나씩 말려 죽이고 있다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이름으로
검은 베레모를 쓴 다이옥신!
몇 대의 비행기가 분무기 뿌리듯 지나가면
정글은 파삭 늙어버렸다
가을도 없이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선택적으로 죽이는 강력한 제초제
그래그래, 잡초 같은 전우들이 어디 한둘이더냐
*
폭로된 전우들은 75세 이상이 돼야 보훈병원 진료비를 감면받을 수 있다고 선심 썼던 나라 대한민국. GNP 103달러밖에
안 된 피죽도 먹기 힘들었던 그 당시, 미국과는 참전 수당으로 1인당 월 200달러 받기로 계약했지만, 정부는 월 30~40달
러만 지급하고 국가경제 부흥 명목으로 차압했던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우리들은 참외 속의 씨보다 더 많이 파병되었다.
한번 용병은 죽어서도 애국자가 되어야 했다.
왜냐구? 참외는 씨를 많이 품을수록 더욱 단 법이니까!
* 월남전에서 사용된 고엽제. 다이옥신이라는 맹독의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초미량이라도 인체에 들어가면 각종 암
과 신경계 마비를 일으킨다.
대팻밥-못의 사회학 3
대패질을 한다
결 따라 부드럽게 말려 오르는
밥은 밥인데 못 먹는 밥
당신의 대팻밥
죽은 나무의 허기진 하루
등 굽은 매형의 숫돌 위에
푸르게 날 선 눈물이
대팻날을 간다
자주 갈아 끼우는 분노의 날 선 앞니
이빨 없는 불평은
결코 물어뜯지 못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대팻밥을 뱉으며
가래침 같은 세상을 뱉으며
목수는 거친 나뭇결을 탓하지 않는다
시시비비
입은 가볍고
혓바닥만 기름진 세상
먹어도 먹어도 헛배 타령하는
대패질은 자기착취다
비껴온 세상의 결 따라
날마다 소멸되는 나사렛 사람
나의 목수는 밥에서 해방된 천민이다
거멀못에 대하여
등잔 밑이 어둡다
세상 틈새를 잡기 위해
걸쳐 박은 거멀못
이 시대 가장 캄캄한 별로 떠 있는 날
한번 무릎 꿇어본 자라면
맨 끝줄에 선 그를 알아볼 것이다
엉겅퀴같이 흐트러진 머리
적의를 품은 가시 면류관
오, 폭풍의 정신아, 찬양받을지어다
무덤으로 길을 막는 자
입으로만 샬롬 나누는 자
뱀도 살지 못하는 약속의 땅은
이제 세상의 화약고가 되었다
모든 순례자들이 조문객으로
길을 잘못 찾아들었구나
어느 아비가
또 너와 함께 눈물 흘리기를 바라겠는가
적의의 가시 면류관아
오, 폭풍의 정신아 다시 불어다오
우리의 마지막 생에 밝히는
지체 장애 3등급으로 떠 있는 별,
예루살렘의 거멀못아!
모퉁이 새겨진 기도
늦은 나이, 조그만 출판사 하나 차린 나는
이른 아침 책상모퉁이에서 기도한다.
남들 볼세라 무릎 꿇은 괘종시계
추처럼 두 손 모우면
그때마다 불청객처럼 문 두드리는 한통 전화.
어이, 종처리
하느님보다 먼저 응답하며
내 아침기도의 불평을 틀어막은 편운.
저녁 대포 한잔하세나
이보다 더한 세상 응답 또 있을까
문득 당신을 그리면
내가 더 그리워지는 그 책상모퉁이.
때때로 마음 쓸쓸하면 우리는
정종대포로 데워진 혜화동
당신을 기다려 본다
한잔, 또 한잔 흔들리면
‘봄날은 간다’ 십팔번 한 곡조 뽑고
갱상도 첫발음 조심하라는 산사山史도 촛병화하고
우리는 안다 이 풍진 세상
목로주점에서 돌아앉은 당신의 파이프
합석한 우리만 모른 채하는구나
바람 불고 또 날이 가면
이승에서 다 같이 갑장 된 우리
시의 화석으로 남게 되리라
닭장도 때로는 추억이다
장닭이 수탉인지
수탉이 장닭인지 어린 나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어쨌든 놈들은 자주 암탉 등을 올라탔고
나를 쫓아다니며 연신 쪼아대었습니다
가족 중에서 가장 어린 나만 겁주고
횃대 위로 날아가 목청을 뽑았습니다
한밤중에도 길게 목청을 뽑다가
저놈 때문에 집구석 망친다고
아버지는 닭모가지를 비틀어 버렸습니다
밥상에 오른 닭을 모두 맛있게 먹었지만
나는 끝끝내 먹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 닭은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밤중 나도 잡아먹힐까 싶어
내 딴에는 뜬눈으로 지샜는데
붉은 닭벼슬 같은 아침이 오면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울고 보챌때마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불쌍해서 키운다고
온 가족이 깔깔깔 거린 날
내 머릿속에는 밤새 잘 발라먹은 닭뼈가
후두둑후두둑 소나기처럼 떨어졌습니다
봄날은 간다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한 스무 해쯤 꽃 진 자리에/ 그냥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일 마음 같진 않지만/ 깨달음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 깨침에 꽃 피었다/ 가진 것 다 잃어버린/ 저기 저, 발가숭이 봄!/ 쯧쯧'.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한 스무 해쯤 꽃 진 자리에
그냥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일 마음 같진 않지만
깨달음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한순간 깨침에 꽃 피었다
가진 것 다 잃어버린
저기 저, 발가숭이 봄!
쯧쯧
혀끝에서 먼저 낙화합니다
재봉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는
집집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을의 하늘과 아이들이
쉬고 있다
마른 가지의 난동(暖冬)의 빨간 열매가 수실로 뜨이는
눈 나린 이 겨울날
나무들은 신의 아내들이 짠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의 겨울바다로 한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한 가봉(假縫),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
천사에게 주문받은 아이들의 전 생애의 옷을 짜고 있다
설레는 신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나와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懷孕)의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레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儀式)의 옷을 입고
축복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는 직조(織造)의 방에 누워
내 동상(凍傷)의 귀는 영원한 꿈의 재단,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 일을 엿듣고 있다
<<김종철 시인 약력>>
*1947년 부산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1968년〈한국일보〉신춘문예, 1970년〈서울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서울의 유서 遺書』『오이도』『오늘이 그날이다』『못에 관한 명상』
『등신불 시편』『어머니, 우리 어머니』
*(김종해, 김종철 형제 시집)『못의 귀향』『못의 사회학』.
*현재 계간 《시인수첩》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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