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막내딸(외 2편) /김명

율카라마 2014. 7. 2. 20:13

막내딸(외 2편)

 

          김명 

 

 

  코흘리개 막내딸 저리가 저리가 해도 옆구리에 착 달라붙어 이게모야 이게모야 한다 엄마 얼굴 그림 그릴 때 쓰는 아이 샤도우다 해도 그게모야 그게모야 한다 참내 아이샤도우가 아이샤도우다 해도 내 런닝구에다 훌쩍거린 코 슬그머니 닦으며 샤도가 모야 샤도가 모야 한다 이놈이 한 소리 할라치면 눈치는 빨라 후다닥 궁뎅이를 뺀다 저놈이 누굴 닮았나 생각해보니 흑백사진 속 엄마 치맛자락 치근덕 땡강 부리는 이 빠진 고녀석이다

 

 

딸꾹질 4

   -시치미 

 

천년숨결 천태산 은행나무는 방귀를 뽕뽕 뀌어

 

무성한 잎사귀가 노래졌다는데 

 

노란 이불 아래 개구쟁이 막내 겨우 잠든 나들잇길

 

아내와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소쩍새는 왜 울고 지랄이야

 

 

 

 

 

    아빠가 들켰다

 

 

  마흔셋 아내가 열 달 부른 배를 열었다 아니 이 세계에선 정확히 날짜를 계산하는 것인데 이십일이 빠르단다

  현장에선 ‘허용오차’라는 게 있어서 근사치면 두리뭉실 넘어가는게 관례지만 그래 이 꼬맹이는 정확히 아홉 달 하고 열흘 만에, 열 시간 동안 끙끙대다 빛을 봤다 

 

  부스스한 새벽 이제 열흘 된 꼬맹이가 꼼지락거린다, 만세를 부른다 우리 조상 중에 독립군이 있었나 간간이 전해지던 귀한 말씀 중엔 할아버지는 세상 뜨시는 그날까지 호미와 괭이를 들고 계셨다 하고 아버지는 고향에서 머리를 깎으시다 일찌감치 서울로 진출하셨고 후엔 거룩한 ‘노가다’로 사우디도 몇 번 다녀오셨다는   별들도 잠이 든 새벽 만세 부르며 끙끙대는 꼬맹이를 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습도가 높고 기온이 이슬이슬한 날에, 서해에서 황사바람이 부는 날에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을 켜고 어깨와 어깨를 부딪치며 힘찬 노래를 부르던 일이 있지 않았던가 눈도 뜨지 못한 녀석이 아빠가 한 일을 어떻게 알고 저 도원(桃源)에서 세상의 흉내를 내는 걸까

 

  아빠가 너에게 다 들켰다

 

 

 

  - 《아름다운 작가》(양주작가회의, 2013)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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