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모든 사람이 쓰고 싶은 시에 대해 /이승훈

율카라마 2014. 11. 11. 12:12

모든 사람이 쓰고 싶은 시에 대해

이승훈

 

 

요즘엔 모두가 시를 쓰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모두가 시를 쓰고 있다 돈을 위해서 쓰는 사람도 있고
명예를 위해서 쓰는 사람도 있고 심심풀이로 쓰는 사람도 있고(이승훈 씨 같은 사람) 재미로 쓰는 사람도 있고 직업으로 쓰는
사람도 있고 그냥 쓰는 사람도 있고 자기를 위해 쓰는 사람도 있고 아무도 자기가 쓴 시를 안 읽어도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고 전혀 안 쓰는 사람도 있고 쓰려고 벼르고는 있지만 아직 한번도 안 쓴 사람도 있고 한때는 시를 쓰려고 했지만 지금은
전혀 관심이 없어진 사람도 있고 언젠가는 시를 쓰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시를 쓰기를 포기한 사람도 있고 오래전에 포기
했던 시쓰기를 새로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시 대신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고 수필이나 수표나 저속한 농담이나 화장실
에서 낙서만 쓰며 사는 사람도 있고 물론 시를 쓰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고 (이승훈 씨 아내 같은 사
람) 시를 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역겨워져 포기한 사람도 있고 쓰던 중간에 중단한 사람도 있고 - 물론 자기는 결코 시를 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시도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는 시 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쨌든 쓰는 사람도 있고 자신
은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도해 보지 않은 사람도 있고 절망감에서 시를 쓰기를 포기한 사람도 있고 영원히 끝
낼 수 없는 빌어먹을 시를 포기 하지 않고 계속해서 쓰는 사람도 있고 (다시 이승훈 씨 같은 사람) 중간에 그만 두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시쓰기에 비참하게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처음엔 실패하지만 곧 성공했다가 나중에 다시 실패하는 사

람도 있고 자기가 쓴 시를 불태우는 사람도 있고 불태운 다음에 다시 새로운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시를 써서 쓰레기통에 넣

는 사람도 있고 그럴 가치도 없는 시를 계속 쓰레기통에서 꺼내 출판사에 보내면 출판사에서는 또 다른 쓰레기통에 그걸 던져

넣는 사람도 있고 - 좋은 시를 못 썼다고 생각해서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걸레 같은 시를 썼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등등 -

 

 

 

- 시집『나는 사랑한다』(세계사,1997)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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