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에 관한 비망록
내게 오래된 평상 하나 있었네.
등 대고 누우면 뼈와 살이 맞물려 바퀴처럼 돌고,
마모된 시간의 틈새에선 잠이 솟아나왔지
마파람 안고 뒹굴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 들렸어
어긋난 시차를 살아온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몽환적인 삶이 엮인
대나무 평상
시간 밖 내 삶이 거기에 살 하나 덧대어 엮이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나곤 했지
나 다시 평상에 누울 수 없네
관도 없이 대나무 평상에 누워, 수의도 없이
괴색 가사 걸치고 떠나시는 스님 좀 봐,
시오 리 산길, 문도들의 무등 타고 가며 가며
꽃 짓고 나비 짓고 구름 지어 함께 놀다가
날 저물어 불 속으로 돌아 들어가시네
지따지따 지리지리 빠다빠다*
평상이 죽비 되어 내 등을 내리치니
더는 누울 수 없어 시렁으로 바꾸려 하네
네 귀퉁이 삼줄로 잡아매어 키보다 높게
천장 아래 시렁가래 매달아 놓았네
그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다가 어느 봄날 때 되면
올라타고 봄나들이 가려 하네
지따지따 지리지리 빠다빠다
————
* 불설소재길상다라니경 중 한 대목.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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