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차마, 귀(耳)가 되어 내리는
박연준
깨금발로 가벼이 내리는 봄비
뒤척이던 봄의 땀방울일까
아홉 개의 귀를 삼킨 흐르는 봄아
등걸잠 자던 옛 애인은
벚꽃 아래 숨어서 늙지도 않고
파랑이 됐다가, 수의(壽衣)가 됐다가
입김이 됐다가, 봄이 되어 내리나
쇳물처럼 붉게
녹을 품고 내리나
당신─이라는 테두리에 스민 철없는 마음
들릴까, 어쩌면 들릴 수도 있을까
속절없이 눈감은 숨은 별들아
바스러진 봄 귀(耳)가 하나, 둘, 우수수
꽃잎처럼 사뿐히 떨어지면은
내리나 당신, 붉게 흘러내리나
봄 그림자 넓게 지나가는 밤
모르고 활짝 핀
밤의 귀들아
눈 감고 실컷 뛰어다니렴
—《문장웹진》201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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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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