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al language[詩語]

[스크랩] 노크하는 물방울(외 1편) /이혜미

율카라마 2014. 5. 29. 13:17

노크하는 물방울(외 1편)

 

     이혜미

 

 

 

   똑 똑 사람을 부르는 소리다 손가락을 원하는 마음이다 그런 적이 있었지 소리 아닌 것으로 다정한 이를 부르던, 툭 하고 부드럽게 이마를 치면 감긴 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눈동자

 

   손을 담그면 진저리치며 젖어드는

   두 개의 구멍 속

 

   그런 적이 있었지 서로의 액체가 되어 출렁이던

   완벽하게 밀폐된 방을 헤엄치던

 

   눈을 깜빡일 때마다 노크소리가 난다 저 멀리로부터

   나는 바라본다 초점을 흐리려 애쓰며 몇 겹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네가 후, 바람을 불어주자

   눈 속에서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현대시》2014년 4월호

 

 

 

숨의 세계

 

 

 

잠든 이의 코에 손을 대어보는 사람은

영혼을 믿는 자다 깊은 밤,

숨은 수풀을 지나 진창을 흐르고

깊이 젖어 고단한 채 돌아온다

 

녹기 시작한 발자국을 따라가듯

먼저 잠든 이의 숨에 입김을 잇대어

호흡의 다발을 엮으면

 

한 편은 불타는 숲

한 편은 휘도는 눈보라

 

사이를

숨은 새처럼 날아간다

문득, 다른 궤도로 진입하는 행성처럼

 

안겨 잠든 새벽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어

하나의 눈송이가 메마른 들판으로

순하게 내려앉는 소리

젖은 귀를 어루만지는

외바퀴 소리

 

가볍고 약하고 흰

매 순간 새로 태어나는 심연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얼굴을 잊는다

뒤섞여 드리우는, 스미는

점차 짙어지며 나지막해지는

공기의 매듭들

 

 

 

                      —《유심》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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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 1988년 경기 안양 출생. 건국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중. 2006년《중앙일보》신인문학상 당선. 시집 『보라의 바깥』.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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