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어디서 무슨 병 깊이 들어
김명인
길을 헤매는 동안 이곳에도 풀벌레 우니
계절은 자정에서 바뀌고 이제 밤도 깊었다
저 수많은 길 중 아득한 허공을 골라
초승달 빈 조각배 한 척 이곳까지 흘려 보내며
젖은 풀잎을 스쳐 지나는 그대여 잠시 쉬시라
사람들은 제 살붙이에 묶였거나 병들었거나
지금은 엿듣는 무덤도 없어 세상 더욱 고요하리니
축축한 풀뿌리에 기대면
홀로 고단한 생각 가까이에 흐려 먼 불빛
살갗에 귀에 찔러 오는 얼얼한 물소리 속
내 껴안아 따뜻한 정든 추억 하나 없어도
어느 처마 밑
떨지 않게 세워 둘 시린 것 지천에 널려
남은 길 다 헤매더라도 살아가면서
맺히는 것들은 가슴에 남고
캄캄한 밤일수록 더욱 막막하여
길목 몇 마장마다 묻힌 그리움에도 채여 쩔뚝이며
지는 별에 부딪히며 다시 오래 걸어야 한다
출처 : 시와 공간
글쓴이 : 이양덕 원글보기
메모 :
'Poetical language[詩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미륵불 /이덕규 (0) | 2012.08.22 |
---|---|
[스크랩] 어두워지는 연못 /박수현 (0) | 2012.08.17 |
[스크랩] 반음계 /고영민 (0) | 2012.08.06 |
[스크랩] 참 이상도 하지 /김권태 (0) | 2012.08.01 |
[스크랩] 달과 수숫대 /장석남 (0) | 2012.08.01 |